항목 ID | GC011006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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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陰城權近-慶州李氏墓表 |
영어의미역 | Tombstone of Lady Yi from Gyeongju, Gwon Geun's Wif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산 7[능안로 377-15]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길경택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1년 3월 30일 - 음성 권근 및 경주이씨 묘표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07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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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음성 권근 및 경주이씨 묘표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성격 | 비석 |
양식 | 묘비 |
건립시기/일시 | 1409년 |
관련인물 | 권근(權近)[1352~1409]|경주이씨(慶州李氏) |
재질 | 화강암 |
높이 | 158㎝[권근 묘표] |
너비 | 55㎝[권근 묘표]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산 7[능안로 377-15] |
소유자 | 안동권씨 문충공파 종중 |
문화재 지정번호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근과 그의 부인 경주이씨의 묘표.
[개설]
매장 시에는 봉분을 만들고 봉분 앞에 묘표석과 혼유석, 상석, 향로석을 배치하고 장명등, 촛대석, 문인석 등의 석물을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부부 합장묘의 경우 묘표석을 하나 세워 그 안에 글자를 새기는 것이 일반적이나 좌우에 따로 묘표석을 세우는 경우도 있다.
[건립경위]
양촌 권근의 묘소는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에서 1444년(세종 26) 3월 묘지만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로 이장하였다. 성남에 있는 원래의 묘표석은 500여 년이 지난 1965년에 권근의 묘소 왼쪽 언덕에 있는 문충공사우(文忠公祠宇)로 옮겨 놓았고, 방축리 양촌 권근 부부의 묘소 앞에는 1444년 이장 시 새로 만든 묘표석이 각각 위치하고 있다.
[위치]
음성 권근 및 경주이씨 묘표는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산 7번지[능안로 377-15] 능안 삼대묘의 가장 상단에 위치한다.
[형태]
묘소 오른쪽에는 양촌 권근의 묘표가 있고 왼쪽에는 경주이씨의 묘표가 놓여 있다. 권근의 묘표는 팔각기둥의 형태에 지붕돌을 갖추고 있으며, 8면 중 4면에 비문을 새겼다. 전체 높이 91㎝이며, 지붕돌은 없어진 채 묘표만 보존되었는데 최근에 받침돌과 지붕돌을 만들어 얹었다. 영의정 하륜(河崙)이 비문을 썼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묘 앞에 세우는 묘비를 겸한 묘표일 것으로 추측된다.
화강암 1매석으로 만들었는데 대석은 땅에 묻힌 부분을 제외하고 높이 10㎝, 가로 70㎝, 세로 40㎝ 크기이며 아무 문양이 없다. 비신은 높이 103㎝, 폭 55㎝, 두께 23㎝이며 전·후면에 글자가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높이 45㎝, 폭 65㎝, 두께 30㎝ 크기이다. 지붕돌의 전·후면 하단에는 연화문을 부조하고 양옆은 2단으로 연꽃잎을 말아 올린 형상이고 밋밋한 지붕에 14㎝ 높이의 보주를 놓았다.
부인 경주이씨의 묘표는 1444년 묘소 이장 때 별도로 보관하다가 1999년 4월에 현 위치인 권근의 사당에 세웠다. 재질은 화강암이며, 윗부분 양쪽 귀가 잘린 형태이고 크기는 높이 92㎝, 너비 48㎝, 두께 13㎝이다.
[금석문]
양촌 권근의 묘표의 글씨는 가로·세로 8㎝ 크기의 해서체로, 전면에 2줄로 24자, 후면에 1줄로 13자가 종서로 음각되어 있다. 전면에는 ‘조선국좌명공신의정부찬성사시문충공양촌권선생지묘(朝鮮國佐命功臣議政府贊成 事諡文忠公陽村權先生之墓)’, 후면에는 ‘유명정통구년갑자삼월초십일(有明正統九年甲子三月初十日)’이라고 새겨져 있다.
부인 경주이씨의 묘표의 글씨는 가로·세로 10㎝ 크기의 해서체로, 전면에 2줄 10자, 후면에 1줄 13자가 종서로 음각되어 있다. 전면에는 ‘양촌선생권문충공부인 숙경택주경주이씨지묘(陽村先生權文忠公夫人 淑敬宅主慶州李氏之墓)’, 후면에는 ‘유명정통구년갑자삼월초십일(有明正統九年甲子三月初十日)’이라고 새겨져 있다.
[의의와 평가]
성남의 원래 묘소에서 가져온 권근 부부의 묘지석과 더불어 조선시대 초기 묘제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2001년 3월 30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0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