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08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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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攀 |
영어음역 | Gwon Ban |
이칭/별칭 | 자룡(子龍),안양(安襄),화산군(花山君),안양공(安襄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종대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 자는 자룡(子龍), 시호는 안양(安襄). 할아버지는 양촌 권근(權近)이고 아버지는 지재(止齋) 권제(權踶)이다. 형으로 권람(權擥)이 있다.
[활동사항]
여러 번 과거를 보았으나 급제하지 못하다가 음보(蔭補)로 현릉(顯陵)의 능지기가 되었고 후에 상서원승(尙瑞院丞)에 이르렀다. 형 권람과 함께 계유정난에 가담하여 1455년(세조 원년) 수충경절좌익공신(輸忠勁節佐翼功臣) 2등에 책록되고, 전농소윤·예빈시윤이 되었다. 기사관이 되어 『세종실록(世宗實錄)』을 수찬하는 데 참여하였다.
1458년(세조 4) 판종부시사, 이듬해 첨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고, 이해 4월에 문과 에 합격하였다. 옛 제도에 관위(官位)가 정3품 당상관에 오른 자는 직첩을 반납해야 과거를 볼 수 있었는데 특명으로 반납하지 아니하고 응시토록 허락받았다 한다.
이어 행첨지중추원사·예문관제학에 올라 가선대부로 승진되어 화산군(花山君)에 봉군되고, 10월에는 공조참판이 되어 하정부사(賀正副使)로 표문을 가지고 명나라에 갔다. 1460년(세조 6)에 한성부윤·사헌부대사헌·중추원부사·황해도관찰사, 1461년(세조 7)에 형조참판·공조참판, 1462년(세조 8)에 한성부윤을 지냈다. 1463년(세조 9) 12월에 강원도관찰사에서 충청도관찰사를 명받았다. 1472년(성종 3) 향년 54세로 별세하였다.
[저술 및 작품]
1458년(세조 4) 중삭연(仲朔宴) 때 지은 시와 거제의 무이루에 올라 지은 칠언율시가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안양(安襄)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능안에 안양공 부조묘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