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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633
한자 城郭
영어음역 Seokgwak
영어의미역 Castle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고대/고대,고려/고려
집필자 이주림

[정의]

삼한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적의 습격에 대비하여 흙이나 돌로 구축된 방어 시설.

[개설]

성곽이란 성(城)과 곽(郭)의 합성어이다. 성은 내성을 말하고 곽은 성의 주위를 에워싼 나성의 형태로 우리나라는 내성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공간을 성곽으로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김천 지역에 현존하는 성지들은 대부분이 삼한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축조되었다. 취적봉 성지 등은 삼한 시대에 축조된 성으로 여겨진다. 고성산 성지, 고소산 성지, 속문산 성지, 감문산 성지, 주치 성지, 어전령 성지, 부항령 성지, 구산 성지 등 8개의 성이 삼국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덕대산성, 금오산성(金烏山城) 등은 고려 시대에 축조된 성이다.

[현황]

현재 김천 지역에 소재하고 있는 성곽을 지역별로 살펴보면, 김천 시내에는 양천동 고성산 성지가 있다. 감문면에는 고소산 성지속문산 성지, 개령면에는 감문산 성지, 남면에는 금오산성, 대덕면에는 여산 성지주치 성지 등이 있으며, 부항면에는 어전령 성지부항령 성지, 지례면에는 교리산 성지구산 성지 등이 있다.

1. 고성산 성지[양천동 산25-1번지 일원]

고성산성은 삼국 시대 성으로 추정된다. 해발 482.7m인 고성산 정상을 둘러싸는 산정식 산성이다. 동쪽과 북쪽 방향은 급경사인 자연 지형을 이용하였고, 북·서·남쪽은 성벽을 축조하였다. 동쪽이 트인 말편자의 형태로 성 전체의 길이는 700m이다. 외벽은 석축을 하고, 내벽은 잡석을 채웠다. 성벽의 위쪽은 평탄하게 만들어 사람들이 이동 가능하도록 하였다. 성벽은 대부분 허물어졌으나 정상에서 30m 정도 내려온 곳에서 서쪽 방향으로 성벽의 형태를 갖춘 석벽을 일부 확인할 수 있다.

2. 고소산 성지[감문면 문무리 산69번지 일원]

고소산성은 삼국 시대 성으로 추정된다. 고소산성은 포곡식 산성이다. 전체 둘레는 1.5㎞ 정도이다. 아랫부분에 석축한 곳은 500m이고, 나머지 정상부 쪽으로는 토축을 하였다. 전체적으로 석축은 계곡을 포함하여 U형태이며, 토축은 ∩형태이다. 성 돌의 크기는 40×30×20㎝에서 80×50×30㎝ 정도로 허튼 쌓기를 하였다. 성내에는 완만한 경사의 계곡을 이루나 성 밖인 북·서쪽은 급경사를 이룬다. 토성은 폭 4m, 높이 1~1.5m이다. 정상의 북동쪽 정면으로 추정되는 장대지(將臺址)가 확인된다.

3. 속문산 성지[감문면 송북리 산1번지 일원]

속문산성은 삼국 시대 성으로 추정된다. 백운산 정상에 능선을 따라 축조된 산성은 동북으로 길쭉한 말각 삼각형으로 북서에서 시계 바늘의 반대 방향으로 동쪽까지는 석축과 토축을 혼용하였다. 그리고 동에서 북쪽까지, 즉 성북마을이 있는 쪽은 자연 절벽을 이용하였다. 성의 둘레는 800m이다. 성벽은 아래쪽의 석축이 350㎝, 위쪽의 토축이 250㎝이지만, 축성된 부분은 500m 정도 된다. 성내의 북북서 끝에 석축 둘레 30m, 직경 10m의 봉수대라 추정되는 곳이 있다. 현재 샘 2개, 문지(門址) 2개, 망루 추정지 3개, 장대(將臺) 1개소가 확인된다.

4. 감문산 성지[개령면 동부리 산9번지 일원]

감문산성은 삼국 시대 성으로 추정된다. 산정(山頂) 둘레와 동북쪽 능선을 따라 축조된 토성(土城)의 흔적이 있다. 장축 방향은 남북으로 길이 200m, 높이 2.5m, 성폭은 10m이다. 동쪽 성 밖은 급경사를 이용했다. 성의 동남쪽 10여m 지점에는 본성의 외성으로 보이는 토성이 20m 정도 구축되어 있다. 취적봉(吹笛峰) 정상은 남북으로 길쭉한 타원형의 평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봉수지(烽燧址)로 추정되는 돌을 쌓은 구조물이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5개가 있다. 취적봉의 평평한 대지가 남아 있고, 그 내부에서 삼국 시대 와편(瓦片) 수점이 수습된다.

5. 금오산성[남면 오봉리 산184 외 6필]

금오산성은 고려 시대의 성으로 추정된다. 해발 고도는 976m이다. 험준한 금오산의 정상부와 계곡을 이중으로 두른 석축 산성이다. 성내는 산의 위 부분에 둘레가 4㎞, 외성은 계곡을 감싸는데 둘레가 2㎞이다. 내·외 성벽의 길이는 6.3km이다. 고려 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성터로 추정되며, 지금은 내성·외성 일부 성벽, 문지·암문의 유지가 남아 있다. 현재 기념물 제67-다호로 지정되어 있다.

6. 여산 성지[대덕면 대리 산32번지 일원]

여산성은 삼국 시대 성으로 추정된다. 포곡식 산성으로 예서마을 뒷산인 해발 560m 정상을 중심으로 서쪽 능선을 따라 성벽의 흔적이 보인다. 정상부는 석축의 형태가 뚜렷하게 남아 있으며, 폭 2.5m, 높이 2m 정도이다. 상당히 많이 무너졌음에도 성벽의 형태는 남아 있다. 성의 동쪽은 급경사의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만들어졌다. 성의 폭은 1~2m, 외벽의 높이는 5m 정도이다. 축성 방법은 내벽과 외벽을 돌로 쌓고 가운데를 흙으로 채우는 협축법(夾築法)을 사용하였다. 성의 전체 둘레는 1.5km이다.

7. 주치 성지[대덕면 덕산1리 산22-4번지 일원]

주치성은 삼국 시대 성으로 추정된다. 대덕면 덕산1리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부평리 사이에 위치한 주치산[일명 덕산재] 정상 남쪽 능선 상에 있다. 부항령 성지어전령 성지와 거리는 각각 4㎞, 1㎞로 매우 가깝게 위치하고 있다. 주치산 정상에서 남북으로 능선이 이어져 해발 1,290m의 대덕산에 다다른다. 이 능선을 따라 토성의 흔적이 보인다. 확인 가능한 성의 길이는 100m 정도로 성 높이는 1m 내외이고, 폭은 3m 정도이다. 성의 동쪽은 급경사를 이루며, 서쪽은 완만하다.

8. 어전령 성지[부항면 어전리 산76-2번지 일원]

김천 어전리 어전령 성지는 삼국 시대 성으로 추정된다. 부항령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이어진 능선을 따라 축조되었다. 무주 쪽인 서쪽은 막돌과 큰 할석(割石)을 이용하여 석축을 일정하게 규칙 없이 쌓아 놓았다. 이 높이는 3m 정도인데, 헬기장을 조성하면서 쌓았을 가능성도 있지만 망루지 또는 초소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석축은 망루지에서 남쪽으로 40m 이어진다. 부항면 쪽인 동쪽은 급경사를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북쪽은 해발 900m가 넘는 험준한 산악 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토성 흔적이 일부 확인된다.

9. 부항령 성지[부항면 어전리 산118-3번지 일원]

부항령성은 삼국 시대 성으로 추정된다. 가목마을 서쪽 산 정상에서 동북으로 100m 쯤 아래 해발 600m쯤의 능선에 부항령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이어진 능선을 따라 위치해 있다. 성의 서쪽, 즉 무주 쪽은 막돌과 큰 할석을 이용하여 석축을 일정한 규칙 없이 높이 3m 정도를 쌓았는데 망루지 또는 초소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석축은 망루지에서 남쪽으로 40m 가량 남아 있으며 윗부분은 약 5m마다 40㎝ 쯤의 크기로 네모꼴로 파여져 있는데, 성안에서 아래로 향해 활을 쏘는 곳이라고 한다. 석축은 헬기장을 만들 때에 쌓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동쪽인 부항면 쪽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고 북쪽은 해발 900m가 넘는 험준한 산악 지대가 형성되어 있으며, 토성(土城) 흔적이 일부 확인된다.

10. 교리산 성지[지례면 교리 산63번지 일원]

교리산성구산 능선의 정상 부분에 동서로 길게 축조된 토성이다. 성의 둘레는 400m 정도이며 서쪽 끝에는 20m×20m의 편편한 대지가 만들어져 있어 과거에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남쪽 지례면 소재지 쪽의 성벽은 10m 정도의 길이로 석축이 남아 있는데 높이가 160㎝ 정도 되며, 그 위에 다시 토축을 했지만 붕괴되었다. 지례중학교 쪽 성벽은 2m 높이의 토축 성벽이 100m 정도 남아 있다.

11. 구산 성지[지례면 상부리 산32-1번지 일원]

구산성구산의 남동쪽 능선 해발 200m 지점에서 정상의 능선을 따라 북서쪽으로 축조된 장타원형의 토석 혼축성이다. 성의 규모는 길이 200m, 둘레 400m, 폭은 5m인데 남서쪽 25m는 토축 위에 다시 석축을 했다. 석축의 폭은 1m, 높이 1m이다. 장축은 남동과 북서를 향하고 있다. 구산 성지의 양끝에는 지름 12m 정도인 원형의 구조물지가 있는데 북서쪽은 망루지, 남동쪽은 봉수지로 추정된다. 드러난 석성은 길이 40m, 폭 2.7m, 높이 1m이다. 현재 성벽의 가운데 부분은 깊은 고랑이 패여 있으며, 자기 편과 기와 편들이 확인된다. 성내 정상에는 거창과 김천을 연결한 구산 봉수지가 남아 있는데 지금은 퇴락하여 1t 가량의 돌만이 모여 있다. 현재 산봉우리에 봉수대 이외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12. 취적봉 성지[개령면 동부리 산9번지]

취적봉성은 삼한 시대의 토성으로 추정된다. 감문산 북쪽의 해발 320m 취적봉 산정에 위치한다. 이 성은 토성으로 취적봉 정상의 능선을 따라 동북으로 2.5m 높이로 구축되어 있다. 장타원형으로 장축 방향은 남과 북으로 향하고 있으며 장축 길이는 200m, 폭은 10m, 성벽의 높이는 2.5m이다. 성내 북쪽에는 봉수대와 고분으로 추측되는 5개의 돌무더기가 있고 동남쪽에는 435년(눌지왕 19)에 세웠다는 계림사가 있다. 성의 동남 10여m에는 외성이라 볼 수 있는 토성이 20m 정도 구축되어 있다. 성 밖 동쪽은 경사 70도의 가파른 절벽이다.

13. 덕대산 성지[구성면 흥평리대항면 향천리]

덕대산성은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석성으로 추정된다. 해발 811m의 덕대산에 위치한다. 고려 말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문하생 안동장군(安東將軍) 이미숭(李美崇)과 진서장군(鎭西將軍) 최신(崔信)이 왕위에 오른 이성계(李成桂)[1335~1408]에 반대하여 관군과 충청도 미산(尾山)에서 싸우다가 패한 후 이곳에 들어와 성을 쌓고 싸우다가 전세가 불리해지자 성주로 철수하여 원산(元山)[가야산맥의 한 지류]에서 전사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임진왜란 때에 주민들이 이곳에 피난하여 무너진 성을 다시 수축하다가 중단하고 대신 금오산성을 쌓았다고 전한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7.21 2011년 한자 최종 검토 작업 정상의 북동쪽 정면으로 추정되는 장대지(張臺址)가 확인된다. ->정상의 북동쪽 정면으로 추정되는 장대지(將臺址)가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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