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곡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393
한자 部曲制
영어공식명칭 Bugokje
이칭/별칭 향소부곡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위은숙

[정의]

고려 시대 경산 지역에 설치되었던 특수 행정구역.

[개설]

고려 시대 향(鄕)·소(所)·부곡(部曲)·장(莊)·처(處) 등의 부곡제(部曲制) 영역은 지방제도 하에서 주(州)·부(府)·군(郡)·현(縣) 등의 하부구조였다. 이 가운데 향·부곡은 주로 농업에 종사하는 지역으로 고대부터 존재하였지만, 수공업 생산 등을 담당했던 소를 비롯한 장·처 등은 고려 시대 이후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파악되는 부곡제 지역은 향 138개소, 소 241개소, 부곡 406개소이다. 조선 시대 이후 부곡제 영역은 중앙 정부의 지방 통치 강화와 향촌 개발과 맞물려 통폐합 과정을 겪으면서 소멸되어 면리(面里)로 개편되었다.

고려 시대 경산 지역을 구성했던 경산현(慶山縣)·하양현(河陽縣)·자인현(慈仁縣)에도 부곡제 영역이 존재했다. 현재 지명이 확인되는 것은 안심소(安心所)·이지은소(梨旨銀所)·구사부곡(仇史部曲)·양량촌부곡(陽良村部曲)·이지부곡(貍只部曲) 5개이다. 이 가운데 안심소는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안심동 일대이며, 이지은소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과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청통면 경계 지역, 구사부곡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남부 지역으로 비정하고 있다. 양량촌부곡과 이지부곡은 옛 하양현 서쪽에 있었다고 하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제정 경위 및 목적]

부곡제 영역 가운데 향·부곡 등은 신라 때 전정(田丁)이나 호구(戶口)의 규모가 적어 군현이 될 수 없는 지역에 설치되었다. 반면 고려 시대의 부곡제 영역은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고려왕조에 저항했던 지역이 정치적인 이유로 강등되기도 하였다. 부곡제 영역은 경상, 전라, 충청 지역에 80%이상 분포되어 있는데, 바로 이 지역이 후백제와 고려가 각축을 벌이던 곳이었다.

경산 지역에 있었던 구사부곡·양량촌부곡·이지부곡은 설치 경위를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구사부곡의 경우 통일 신라 시대까지는 여량현(餘粮縣)이라는 군현이었으나, 고려 초 구사부곡으로 강등된 것으로 보아 후삼국 시기 정치적 행보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한편, 소는 주로 왕실 및 관아에서 필요로 하는 수공업·광업·수산물 관련 공물을 생산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편성한 지역이었다. 소의 경우도 향·부곡과 마찬가지로 반역 등의 행위로 촌락 전체가 강등되어 강제적으로 편성되기도 했지만, 상당수는 군현에 부과된 특정 물품의 생산을 위해 일반 촌락민을 강제로 동원하여 소로 편성한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안심소의 설치 경위는 명확하지 않으며, 이지은소의 경우 원래 영주(永州)[지금의 경상북도 영천시]의 속현(屬縣)이었으나, 고려 중기 무렵 고을 사람들이 국가의 명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백성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이지은소로 강등되었다고 한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7, 경상도(慶尙道) 경주부(慶州府) 편의 속현조에 당시 경주부 임내(任內)였던 구사부곡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같은 책 하양현 편의 고적(古跡)조에서는 양량촌부곡·이지부곡·안심소·이지은소가 확인된다. 이지은소의 경우 신녕현(新寧縣) 편에서도 보이는데, 이 지역이 당시 하양현과 신녕현 경계에 해당되어 두 군데 모두 수록된 듯하다. 그 외에도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의 지리지류와 읍지류를 통해 부곡제 영역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경산현 지역에는 부곡제 영역의 행정 단위가 기록상으로 남아 있지 않다.

[내용]

하양현의 양량촌부곡은 현의 서쪽 12리에 있었으며, 이지부곡은 현의 서쪽 8리에 있다. 안심소는 ‘명산(明山)’이라고도 하는데, 공산(公山) 밑에 있었다. 성씨로는 『세종실록지리지』에 전(全)·신(申)·김(金)·박(朴)·허(許)·노(魯),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전(全)·박(朴)·이(李)·최(崔)·신(申)·김(金)·허(許)·노(魯)·형(荊)씨가 소개되어 있다. 이지은소는 신녕현 서쪽 20리 지점에 있었다고 하는데, 성씨로는 이(李)·윤(尹)·안(安)씨가 있었다. 이지은소는 은을 공납하는 곳이었으나, 안심소는 어떤 물품을 생산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는다.

자인현 지역에 있었던 구사부곡은 고려 시대에는 경주부의 임내였다. 성씨로는 정(鄭)·석(石)·조(曹)·전(全)씨가 있었다.

[변천]

고려 시대 부곡제 영역은 조선 전기인 15세기경 이미 90%정도가 해체되어 있었다. 경산 지역의 부곡제 영역도 고려 말에서 조선 초를 거치면서 대부분 해체되어갔다.

하양현의 양량촌부곡과 이지부곡은 소멸 시기가 남아 있지 않은데 고려 말 조선 초에 없어진 듯 하다. 다만, 양량촌부곡에는 조선 전기 양량원(陽良院)이 설치되었었다. 안심소는 1394년(태조 2) 경상도 도관찰사 민개(閔開)의 보고에 따라 하양현에 합속되었고, 이후 면리로 개편되었다. 이지은소는 1335년(충숙왕 복위 4) 당시 원나라 황제였던 순제(順帝)의 명으로 이지현(梨旨縣)으로 승격되었다. 고려 출신 원나라 내시였던 나수(那壽)와 야선불화(也先不花)의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이지현은 1394년 신녕현에 합속되었다.

구사부곡은 1658년(효종 9)까지 경주부의 임내로 존재하였다. 당시 구사부곡 사람들의 생활권은 같은 경주부의 임내였던 자인현과 같았다. 그런 이유로 1637년(인조 15) 자인현이 경주부에서 복현(復縣)되었을 때 구사부곡자인현 사람들이 상소를 올려, 구사부곡자인현에 합속해줄 것을 청원하였다. 1658년 건의가 받아들여져 구사부곡자인현의 북면(北面)이 되었다.

[의의와 평가]

경산 지역의 부곡제 영역은 고려 시대 지방 제도의 운영의 특징을 보여준다. 그 중에서 구사부곡의 형성과정이나, 이지은소의 강등과 승격은 정치적인 이유로 행정구역이 개편이 되기도 하였음을 보여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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