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7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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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致俊 |
영어공식명칭 | An Chiju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영배 |
출생 시기/일시 | 1913년 12월 15일 - 안치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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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43년 - 안치준 신사참배 반대운동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73년 12월 23일 - 안치준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8년 - 안치준 건국포장 추서 |
출생지 | 안치준 출생지 -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봉회리 132 |
활동지 | 안치준 활동지 - 경상북도 경산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봉회교회 장로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안치준(安致俊)[1913~1973]은 경산의 봉회교회(鳳會敎會)[지금의 진량제일교회] 장로로 1943년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가계]
안치준은 1913년 12월 15일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봉회리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안치준은 1943년 경산의 봉회교회 장로로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봉회교회는 상림교회·평사교회와 더불어 일제가 강요하던 신사참배를 거부하던 교회였다. 경산 지역의 봉회교회·상림교회·평사교회의 장로와 집사, 그리고 신도들은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라는 성경 구절을 내세우며 신사참배에 적극 항거하였다. 일본 경찰은 교회 설교대 안의 ‘조천기도회 강령’이란 제목 아래에다 ‘조선독립만세·일본타도·영미만세·비밀엄수’ 등의 문구를 써놓고, 교인들이 쓴 것처럼 사건을 조작하였다. 이를 구실로 1943년 11월 17일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교인들을 대거 체포하였는데, 안치준도 이때 체포되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에서 고문과 취조를 받았다. 안치준은 1년간의 옥고를 치른 후 1944년 11월 11일 불기소 처분으로 풀려났다.
[상훈과 추모]
안치준은 1998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