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9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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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上林敎會 |
영어공식명칭 | Sanglim Presbyterian Church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상림길 31[상림리 355-3]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엄진성 |
설립 시기/일시 | 1922년 4월 5일 - 상림교회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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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상림교회 -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상림리 |
현 소재지 | 상림교회 -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상림길 31[상림리 355-3] |
성격 | 교회 |
전화 | 053-851-3130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상림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소속 교회.
[개설]
상림교회(上林敎會)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경청노회 소속 교회이다.
[설립 목적]
상림교회는 경상북도 경산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고 신앙심을 바탕으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상림교회는 1922년 4월 5일에 가정교회[현 진량제일교회]에서 분립하였다. 1943년 경산의 14인 사건이 발생하여 상림교회 교인들이 검거되었다. 경산의 14인 사건은 1943년 6월 18일 당시 봉회교회의 장로 김종철(金鍾徹)의 집을 수색하면서 비롯된 사건이다. 당시 상림교회를 비롯한 평사교회(平沙敎會), 봉회교회(鳳會敎會)[현 진량제일교회]는 강만조(康萬祚) 전도사의 지도를 받고 있었는데, 김종철의 집에서 강만조 전도사가 출애굽기 20장을 본문으로 하여 “민족주의자 모세를 본받자”라는 제목으로 작성한 “2차대전에서 미국이 승리할 것이며 머지않아 한국도 독립이 된다.”는 요지의 설교 메모장이 발견되었다. 일제 경찰은 이를 빌미로 세 교회의 장로와 집사들을 모두 체포하였다. 상림교회에서는 장로 현용주(玄龍珠)[이명 현상유(玄相裕)], 집사 현영조(玄永祚)[이명 현종후(玄鐘厚)], 집사 김종만(金鍾萬), 이종호(李鍾昊) 등이 체포되었으며,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1년의 옥고를 치룬 뒤 석방되었다. 정부에서는 그들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상림교회는 정기 예배를 통해 신앙 활동에 힘쓰고 있으며, 기부 및 봉사활동을 진행하며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현황]
2020년 현재 손은목 목사가 담임으로 있으며, 교인 수는 150여 명이다.
[의의와 평가]
상림교회는 일제 강점기 경산 지역의 개신교 전파 양상을 이해할 수 있는 대표적인 교회로, 1930년대 후반부터 전개된 경산 지역 내 신사 참배 거부 및 항일 투쟁의 중심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