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5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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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花林里廣大村遺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화림리 311-1 |
시대 | 선사/청동기,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이영문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7년 2월 26일 - 화림리 광대촌 유적 동북아 지석묘 연구소에서 발굴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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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7년 5월 8일 - 화림리 광대촌 유적 동북아 지석묘 연구소에서 발굴 종료 |
현 소재지 | 화림리 광대촌유적 -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화림리 311-1 |
성격 | 집자리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화림리 광대촌 마을에 있었던 청동기·삼국 시대 생활 유적.
[개설]
화림리 광대촌 유적은 익산 지방 국토 관리청에서 시행하는 이양·능주 간 국도 29호선 확·포장 공사 구간에 대한 지표 조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2001년 조선 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실시된 지표 조사에서 확인된 6개소에 대한 유적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조선 대학교와 동북아 지석묘 연구소가 분담하여 2004년 6월 5일부터 10월 4일까지 시굴 조사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 동북아 지석묘 연구소에서 화림리 광대촌 유적 범위 3,000㎡에 대한 발굴 조사를 2007년 2월 26일부터 5월 8일까지 45일 간 실시하였다.
[위치]
화림리 광대촌 유적은 북서 방향으로 흐르는 지석천과 서쪽으로 약 400m 떨어진 구릉의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지석천 변 진등이라 불리는 야산의 서쪽 사면으로 철도 경전선(慶全線)과 국도 29호선 사이에 위치한다. 유구는 높이 50m~51m 사이에 형성되어 있다. 행정 구역상으로는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화림리 311-1 일원이다.
[형태]
화림리 광대촌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에 속한 집자리 3기, 집석 유구 1기, 수혈 유구 1기 등 4기와 원삼국 시대 집자리 1기, 삼국 시대 집자리 6기, 시대 미상 수혈 유구 4기 등 모두 15개 유구가 조사되었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총 3동인데 모두 중복되어 일부만 잔존하고 있다. 평면이 원형과 방형으로 소형이며,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없고 기둥 구멍 1개만 확인되어 영산강 유역에서 유행한 소위 송국리식 집자리와는 다른 형태이다. 내부 시설로는 호형 토기가 안치된 저장 구덩이, 벽 주위에 홈이 파여진 벽구와 기둥 구멍 등이 확인되었다.
삼국 시대 집자리는 평면이 방형과 방형계이며, 모두 6기가 조사되었으나 1기만 규모를 알 수 있고 나머지는 중복되어 있거나 훼손된 것들이다. 내부 시설로는 기둥 구멍과 벽구, 장타원형 저장 구덩이가 있다. 특히 가장 잘 남아 있는 1호 집자리에서는 다량의 토기들이 완형으로 출토되었다.
[현황]
화림리 광대촌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기 시대 유물은 항아리형 토기편, 슴베식 돌 화살촉, 삼각형 돌칼, 토제 가락바퀴, 홈자귀편 등이 있다. 원삼국 시대 유물로는 깊은 바리형 토기가 있으며, 삼국 시대 주거지에서는 구멍 뚫린 큰입 토기[有孔廣口小壺], 구멍 뚫린 항아리 토기[有孔壺形土器], 항아리 토기, 큰 항아리 토기[大壺], 뚜껑 접시[蓋杯], 장란형 토기, 시루, 입달린 토기[注口土器], 바리형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광대촌 유적은 발굴 후 학술적인 조사 기록으로 남기고, 현재 국도 29호선 공사로 유적 위는 복토되어 있다. 여기서 출토된 중요 유물은 매장 문화재 보호법에 따라 국가 귀속되어 관리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좁은 범위 안에서 청동기 시대와 삼국 시대 집자리와 집석 유구, 수혈 유구 등 생활 유적이 밀집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대부분 중복 관계로 인하여 집자리 전모는 알 수 없지만 한 곳에서 오랜 기간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측정된 방사성 탄소 연대에서 청동기 시대는 중심 연대가 각각 기원전 560년과 640년으로, 원삼국 시대는 기원후 210년, 삼국 시대는 기원후 620년으로 측정되었다. 이러한 연대는 호남 지역 고고학 편년 연구에 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