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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다리 전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1480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한석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설|지명 유래담
주요 등장인물 임연|여인
관련지명 선바위|세금천|용바위|농다리지도보기
모티프 유형 여인의 효성에 감복해 다리를 놓은 임연|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마다 우는 다리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에서 농다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농다리 전설」은 고려시대 임연이 효녀를 위해 일시에 농다리를 만들었다는 전설이다.

[채록/수집상황]

1982년 진천문화원에서 출간한 『내 고장 전통 가꾸기』와 1994년 진천군지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진천군지』, 그리고 1995년 경기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에서 출간한 『한국문학연구』 제4집에 실린 이영옥의 논문 「농교설화 현지연구」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고려 고종 때의 장군 임연(林衍)[?~1270]이 농다리를 놓았다는 전설이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씨족들 간에 전해 오고 있다. 임연은 매일 아침 세금천에서 세수를 하였는데, 어느 몹시 추운 겨울 날 세금천 건너편에서 한 젊은 부인이 내를 건너려 하자 “여보시오! 이 추운 겨울에 무슨 일로 내를 건너려 하오?”라고 물었다. 이에 부인은 “예. 저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친정에 가는 길입니다.”라고 답하였다.

임연은 추운 겨울에 내를 건너려는 여인의 효성이 지극하고, 또 그 정경이 딱해 “그러면 잠깐 기다리시오.”라고 말한 뒤 즉시 용마를 타고 달려왔다. 임연은 용마로 돌을 실어 날라 하루아침에 다리를 놓아 부인이 무사히 건너도록 하였는데, 이후 이 다리를 농다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용마는 너무 힘에 겨워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다 하며, 또한 바끈이 끊어져 용마에 실었던 돌이 떨어진 것을 그대로 두었는데 그 돌이 지금의 용바위라 전해지고 있다.

또 다른 전설을 보면 나라 안에 큰 변고가 일어날 때에는 농다리가 며칠을 두고 운다고 하는데, 한일 합방 당시와 한국전쟁 시에도 농다리가 며칠 동안 울어 마을 사람들이 밤잠을 이루지 못하였다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모티프 분석]

「농다 리전설」의 주요 모티프는 ‘여인의 효성에 감복해 다리를 놓은 임연’과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마다 우는 다리’이다. 젊은 여인의 효성에 감복한 임연이 하루아침에 돌을 날라 다리를 놓았다는 이야기는 천지 창조 설화의 하위 유형인 거인 설화의 변이 양상으로 여겨진다.

농다리와 관련한 전설에는 대체로 ‘오누이 힘겨루기’ 유형의 변이 양상이 많은데, 임연과 그의 누이가 모두 힘 센 장사이고, 둘이 농다리 놓는 것을 내기로 삼는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농다리 전설」에는 임연이 그의 누이와 힘을 겨룬다는 오누이 힘겨루기 유형은 들어 있지 않으나, 남주인공의 이름이 같은 점과 오누이 힘겨루기 유형이 거인 설화의 하위 유형인 점을 고려해 보면, 「농다리 전설」 또한 오누이 힘겨루기 유형의 다른 변이 양상으로 여겨진다.

‘나라 안에 큰 변고가 있을 때 다리가 며칠을 두고 운다’는 이야기는 조선 후기 민중적 이데올로기인 『정감록(鄭鑑錄)』 신앙과 연관이 있다. 「농다리 전설」에서는 다리가 울었다고만 나와 있으나, 다른 이야기에서는 나라에 변고가 있으면 다리의 돌이 떨어진다는 내용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농다리는 축조 당시 28칸이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지금은 24칸만 남아 있다. 농다리 관련하여 삼국시대 김유신(金庾信) 장군의 아버지 김서현(金舒玄)이 군사적 목적으로 놓았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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