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17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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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지리/동식물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 960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류정환 |
[개설]
삶은 떠나고 돌아오고 또 떠나는 일의 연속이며 그 여정에 다름 아니다.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는, 인류는 끊임없는 이동 속에서 문명을 탄생시키고 제국을 건설했으며 600만 년 인류사에서 정착민의 역사는 고작 0.1%에 불과함을 역설한 바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새 중에도 떠나고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는 새가 있으니, 그것들을 일러 철새라 한다. 제비가 그렇고 왜가리가 그러하거니와 한 철을 머물고 떠나는 습성에 주목하여 붙인 말이다. 돌아오는 것은 번식을 위한 일이고 떠나는 것은 겨울을 나기 위한 일이니, 그 일을 제외한 나머지 삶은 이동하는 것뿐이다. 새들도 사회학적 삶이 인간처럼 복잡할까 싶기도 하지만, 새나 사람이나 생물학적 삶은 그렇게 간단하다.
지정학적으로 해양과 대륙을 잇는 반도 국가인 우리나라에는 철새 도래지가 많다. 그중에서 진천의 왜가리 번식지는 우리나라 왜가리 번식지를 대표하는 곳이므로 천연기념물 제13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백로과에 속하는 여름 철새]
“왜가리님/ 왝/ 어데 가요/ 왝/ 이 저녁에 집을 가오/ 왝/ 왜 혼자 가요/ 왝/ 왜가리님 왜 말은 안 하고/ 대답만 해요/ 왝”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으로 시작되는 「초록 바다」로 잘 알려진 아동문학가 박경종[1916~2006]의 「왜가리」라는 동시이다. 생물학적인 안목이 아닌 어린이의 감성으로 바라본 왜가리가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다.
왜가리[Ardea cinerea]는 황새목[Ciconiformes] 백로과(白鷺科)[Ardeidae]에 속한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름 철새로, 번식 후 동남아시아로 날아가지만 일부 무리는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서 겨울을 나기도 하는 것으로 보아 텃새가 된 것으로 보인다.
날개 길이 42~48㎝, 꼬리 길이 16~18㎝, 몸무게 1.1~1.3㎏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관찰되는 백로류 가운데 가장 크다. 등은 회색, 배는 흰색이고 가슴과 옆구리에는 회색 줄무늬가 있다. 머리는 흰색이며 눈에서 뒷머리까지 이어진 검은 줄이 길고 우아한 댕기 모양을 하고 있다.
부리는 붉은빛이 도는 노란색인데 계절에 따라 노란색이나 분홍색을 띤다. 암수가 같은 색이므로 야외에서 구별하기는 어렵다. 날 때는 다른 백로류처럼 목을 Z자 형태로 움츠리고 난다.
소택지, 습지, 논, 개울, 하천, 하구 등 물가에서 홀로 또는 2~3마리가량의 작은 무리를 지어 먹이를 구한다. 먹이는 어류가 주식이며 개구리, 뱀, 들쥐, 작은 새, 새우, 곤충류 등 다양한 동물성 먹이도 먹는다.
번식은 침엽수와 활엽수 교목[큰키나무]에서 집단으로 한다. 대개 중대백로와 섞여 번식하는데, 백로 무리보다 높은 곳에 둥지를 튼다. 산란기는 4월 중순에서 5월 중순경이며 한배에 3~5개의 알을 낳는다. 산란은 격일 또는 3~4일 간격으로 하나씩 낳으며, 암수가 함께 25~28일간 알을 품고 50~55일간 새끼를 키운다.
[천년 된 은행나무에 둥지를 틀다]
『택리지(擇里志)』에도 “들이 적고 산이 많으나 모두 화창한 기운이 있고 땅이 제법 기름지다.”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진천 지방은 예부터 살기 좋은 곳으로 이름난 고장이다. 평야가 넓고 토지가 비옥한 데다 한해와 수해가 별로 없어 농사가 순조롭기에 산물이 풍성하고 사람들의 인심 또한 좋았으니, ‘생거진천(生居鎭川)’이라 일컬은 것도 이런 까닭이다.
왜가리 번식지가 있는 이월면 노원리는 조선 선조 때의 호성공신인 독송재(獨松齋) 신잡(申磼)이 말년에 낙향하여 터를 잡은 이래 400여 년 동안 평산신씨 집성촌을 유지해 오고 있는 마을이다. 신잡이 진천 땅의 후덕함에 매료되어 세거지로 삼았듯이 왜가리들도 먹이가 넉넉하고 인심도 좋은 진천을 찾아 번식지로 정했던 것은 아닐는지.
이렇듯 유서 깊은 노원리 노곡마을[일명 논실마을]에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45호인 「신잡 초상」을 모신 노은영당(老隱影堂), 신잡의 아버지 무덤로 충청북도 민속자료 제7호인 신화국 묘지(墓誌),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1호인 진천 신헌 고택(鎭川申櫶古宅) 등 신씨 문중과 관련된 문화재가 곳곳에 있다.
또 구한말에 신헌(申櫶)·신정희(申正熙)·신팔균(申八均) 등의 애국지사를 배출하였고, 신잡의 9세손인 신의양의 처 청주한씨의 절개를 기리는 청주한씨 열녀문이 있어 충효의 마을로 자긍심이 높다.
필자가 마을을 방문했던 날도 마침 새로운 정자가 완공되어 자축하느라 음식을 마련하여 어른들을 대접하고 이웃 간에 우의를 나누는 자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의 식민 통치 정책으로 무너지기 시작해 자본주의 물결 속에서 거의 와해돼 버린 우리나라 농촌 공동체의 일면을 확인하는 일은 여간 흐뭇하고 고마운 일이 아니었다.
진천에서 이월 방면으로 7㎞쯤 가면 이월면사무소에 닿기 전에 왼쪽으로 ‘노곡’이란 마을 표석을 볼 수 있다. 진천의 3대 특화 작물 가운데 하나로 전국에서 품질을 인정받고 있는 진천쌀을 공급하는 이월농협미곡종합처리장이 있는 이곳에서 표석을 확인하고 1.2㎞쯤 들어가면 무제산 장군봉 아래 자리잡은 노곡마을에 이른다.
마을 뒤편 산자락에 노은영당과 묘소가 자리를 잡았고, 영당 옆에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이 고목은 수령이 약 800년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천년 된 영목(靈木)으로 믿고 있다. 해마다 찾아와 머무는 왜가리와 백로의 안식처 구실을 하며 오랜 세월을 견디느라 언뜻 보기에도 몹시 피곤한 모습이다.
나무 밑동부터 Y자 모양으로 갈라져 하늘로 뻗어 올라갔는데, 중간 부분 위쪽으로는 왜가리 둥지와 배설물 때문에 거의 말라 버렸다. 많은 생명들이 깃들인 둥지들을 떠받치느라 힘겨워 죽어 가는 은행나무가 안쓰러웠는지, 현재는 왜가리들이 주변 숲으로 옮겨 살고 있다.
[노곡마을에 둥지를 튼 왜가리]
노곡마을에 왜가리가 서식한 것은 이미 수백 년 전으로 알려져 있는데, 마을 주민들이 돌보기 시작한 것은 약 100년 전부터이다. 왜가리들은 해마다 3월부터 날아와 둥지를 틀고 번식하다가 11월에 떠난다. 먹이를 구하는 곳은 미호천(美湖川)과 그 지류 및 인접한 논 지역이다.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당시에는 마을 은행나무에 수십 쌍의 백로와 왜가리가 번식하였고, 1969년 조사에서는 중대백로, 중백로, 왜가리 64쌍이 번식하여 전체 집단은 약 300~370마리에 이르렀다. 1973년 5월에는 백로가 모두 사라지고 왜가리만 약 80여 수 관찰되기도 하였다.
1991년 8월 조사에서는 주변 소나무 숲에서 중대백로 둥지 약 150개, 쇠백로 둥지 4개가 있었으며, 어미 중대백로 65마리와 쇠백로 6마리 등이 눈에 띄었다. 이듬해에는 둥지 수가 적어도 272개가 넘었고, 중대백로 245마리, 중백로 8마리, 쇠백로 15마리, 왜가리 15마리가 관찰되어 백로의 번식 개체 수가 크게 늘어나는 현상을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백로는 거의 날아오지 않고 왜가리만 찾아오며, 은행나무 인근 숲의 참나무·소나무·밤나무·아카시아 나무에서 왜가리 둥지를 볼 수 있다.
마을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찾아오는 왜가리의 수는 해마다 들쭉날쭉하며, 2009년에는 특히 많이 찾아와서 약 700마리가 넘었다고 한다. 아침나절에 무리를 지어 먹이를 찾아 나갔다가 저녁때가 되면 무리를 지어 둥지로 돌아오는데, 그 광경이 매우 볼 만하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서야 점심 무렵에 번식지인 숲이 온통 빈집인 까닭을 비로소 알았다.
왜가리를 관찰하기에는 새가 한창 날아오는 4월이나 번식을 마치고 떠나기 직전인 9~10월이 가장 좋다. 다만 4월은 산란기이므로 지나치게 소란스럽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기왕에 어려운 걸음을 하였다면 마을 곳곳에 있는 문화재를 둘러보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청정 환경을 유지하여 영원한 안식처를 지키고자 노력]
애초 왜가리들이 서식지로 삼았던 은행나무는 마을과 가까운 까닭에 새똥 냄새가 심하여 주민들이 불편을 겪었으나 은행나무가 고사 위기에 처함에 따라 1999년 인근 숲으로 보호 구역을 확대 지정한 후로는 그런 불편이 없어졌다.
왜가리 번식지 관리 주체인 진천군은 자연 상태를 최대한 유지한다는 기본 원칙 아래 번식지 인근의 토지 형질 변경이나 단지 조성, 공장 건립 허가를 최대한 억제하는 등 청정 환경 유지에 힘을 쏟고 있다.
보호 구역으로 지정된 곳은 평산신씨 종중이 소유한 사유지인데, 2006년 숲을 무단 벌목하는 일이 발생하자 진천군에서 법적 조치와 함께 나무를 임시 보식(補植)하는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소유주 측에서도 어지간히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그 뒤로 진천군은 이러한 불상사를 원천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평산신씨 문중에 매각 의사를 타진하는 등 보호 구역 일대 토지 매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