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
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에 있는 자연 마을. 낙현마을은 요천수와 산줄기로 막혀 있어 아늑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처음에는 마을 이름을 누적촌(累績村)이라 불렀는데, 이것은 전주이씨 종친이 세조에게 쫓겨 이 곳까지 오는 동안 쌓이고 쌓인 원한을 표현한 것이다. 그 후 마을 주위를 살펴보니 동쪽은 요천강 줄기와 고개가 있어, 물과 고개로 막힌 셈이어서 개강이름 ‘락...
-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에 속하는 법정리. 남원과 이백을 경계로 하는 요천교를 지나 좌우측에 마을이 위치하고 있으며, 광주 대구 고속 도로가 마을 뒤를, 24번 국도가 마을 앞을 통과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한 평야부의 마을이다. 2007년 2월에 요천 권역 농촌 마을 종합개발 사업이 확정되었다. 계산(鷄山)마을은 마을의 대나무 곁에 단풍나무들이 있어 풍...
-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진기리 신기마을에 있는 수령 600년의 느티나무. 남원 진기리 느티나무는 높이 약 20m, 흉고둘레 7.7m이다. 가지는 동쪽으로 12m, 서쪽으로 13m, 남쪽으로 13m, 북쪽으로 13m 퍼져 있다. 사방이 원형으로 고루 퍼져서 수형이 아름답고 수세가 양호하다. 조선 세조 때 우공이라는 무관이 있었는데, 그는 기골이 장대하...
-
양을나를 단일 시조로 하고 남원을 본관으로 하는 동계 혈족. 양탕(良宕)이 광순사로 신라에 입국한 후 내물왕으로부터 성주·왕자의 작호를 받으면서 양(良)을 양(梁)으로 고쳐 성씨를 부르게 되었다. 제주에 거주하던 양씨의 일파인 양탕(梁宕)의 8세손 양자영(梁自瀛)이 신라 경덕왕 때에 신라 왕실에 공을 세워 남원군(南原君)에 봉해지게 되면서 제주양씨에...
-
전라북도 남원시 내척동 미동마을에 있는 석불 입상. 내척동 석불입상은 전라북도 남원시 내척 미동마을 소재 오장근의 주택 오른쪽 약 5m 동쪽에 서쪽 방향으로 서 있다. 불상이 서 있는 오른쪽에는 복숭아나무 1그루, 왼쪽에는 감나무, 감나무, 아래로 모과나무가 각 1그루씩 서 있으며, 미륵 앞에 가로 1.85m,세로 2.15m 크기의 시멘트로 만들어 놓은 배례단...
-
사매면(巳梅面)은 사동방(巳洞坊)과 매내방(梅內坊) 또는 매안방(梅岸坊)이 있었던 지역으로, 1897년(고종 34)에 8도를 13개 도로 개편하면서 2개방(사동방, 매안방)이 면으로 바뀌어, 사매면이 되었다. 본래 남원군의 사동면과 매내면 또는 매안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매내(안)면의 상신(上新), 중신(中新), 하신(下新), 신촌(新村), 세촌(細村...
-
노봉 마을에서는 삭녕 최씨가 가장 유명한 집안이다. 처음 마을을 세운 최수웅은 세조 때 명신 최항의 손자다. 삭녕 최씨는 대를 이으며 문과에 급제, "6대 등과"로 이름을 떨쳤다. 이 가문은 10현 8한림 5대 진사를 배출했다. 특히 그의 5대손 최온이 폄재라는 호를 사용하여 그의 집안은 세칭 폄재 집안으로 불렸다. 폄재 최온(崔薀)[1583~1659]은 조선 중기의 문...
-
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촌리와 신기리에서 각 한자씩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조선 세조 때인 1460년경 능성구씨가 처음 정착하였다. 그 뒤 부안김씨, 서산유씨가 이주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남원군 산동면 지역으로 큰말 또는 대촌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등구리·선촌리·신기리·대촌리·대치리의 각 일부...
-
노봉마을은 최명희 작가가 1980년부터 17년 동안 혼신을 다해 쓴 대하 예술소설 『혼불』 배경이 되는 마을이다. 『혼불』은 1930년대 후반을 전후로 무너져 가는 종가를 지키려는 종부의 삶과 천민들의 생활상, 각종 민속놀이, 세시풍속, 관혼상제, 음식, 노래 및 이 지역의 역사, 설화, 무가, 두레 풍습은 물론 민간신앙을 자세히 묘사한 민속백과사전격인 작품이다. 문단에서 한국 최...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행정리. 봉화산에서 내려다보면 마을이 가마솥[釜]과 같이 생겼고, 윗다리[上橋]는 솥의 뒤 이마, 아래다리[下橋]는 솥의 앞이마처럼 보인다고 한다. 이 형국을 따서 가마마을이라 하였으며 줄여서 ‘가마말’이라고도 하였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마말이 변하여 ‘가말’이 되었고 한자로 바꾸어 부동(釜洞)이라 하였다. 1460년경...
-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불상을 모셔 놓고 공적으로 불교 신행을 행사는 장소. 9세기 초 남원시 산내면에 지리산 실상사실상사(實相寺)가 구산선문 최초의 가람으로 창건된 후 남원 지역은 선종의 주요 기반이 된다. 도선국사는 동리산문 혜철국사의 제자로 풍수지리와 도참설에 능하였으며 남원 지역에 선원사, 대복사, 만복사, 용담사 등 많은 사찰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고려,...
-
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진주(晋州). 아호는 청암(靑巖). 고려 상호군(上護軍) 소희철(蘇希哲)의 후손이다. 고조는 소을생(蘇乙生), 증조는 소패(蘇覇), 할아버지는 소윤무(蘇允武), 아버지는 소찬(蘇贊)이다. 그의 처부는 종묘령(宗廟令)을 역임한 남원(南原) 양도(梁度)이다. 아들로는 성균생원 소석지(蘇錫智), 노성현감(魯城縣監) 소연(蘇沿), 사헌부감찰...
-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생암리에 있는 단종 폐위에 반대한 이윤철을 비롯한 10명의 현인들의 절의를 기리고자 위패를 모신 사당. 십로사는 10명의 현인을 모셨다는 의미로 쓰인 명칭이다. 십로(十老)란 이윤철, 김박, 설산옥, 오유경, 조윤옥, 안정, 한승유, 설존의, 신말주, 장조평을 가리킨다. 이들은 단종의 신하였거나 당시의 명사들로서 직책과 업무는 달랐으나...
-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에 속하는 법정리. 양가리는 목가리와 양강리를 행정리로 포함하고 있다. 남원시에서 북동쪽으로 6㎞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군도 15호선이 마을 앞을 통과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자연 마을로는 갱거리, 나뭇거리, 양강, 구룡새터 등이 있다. 본래 남원군 백파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목가리와 기양리 일부를 병...
-
고려시대에 전라북도 남원 일대에 설치되었던 교통 및 통신 제도. 역은 삼국시대 이래로 역부와 역마를 이용하여 관물의 수송, 공문서의 전달, 오고 가는 관리들의 숙박에 활용되었다. 고려 성종대에 와서 더욱 구체화된 역참제는 전국 22도(道)에 525개소의 역(驛)으로 구성되었다. 각 역에는 말과 역장(驛長), 역정(驛丁)을 두었다. 이 시기에 전라도에는 전공주도(全公州道) 21개 역...
-
전라북도 남원시의 선사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남원의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유물·유적은 발견된 바 없다. 삼한 시대에는 마한의 영역에 속하였으며, 지리산을 경계로 진한과 변한의 국경 지역에 위치한 군사상의 요충지였다. 이와 관련해 마한이 달궁(達宮) 지방에 별궁을 두고 정장군(鄭將軍)과 황장군(黃將軍)을 파견해 진한·변한의 침략을 막았다는...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동. 월락동은 월미마을과 낙현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월미마을의 명칭은 처음엔 미륵생기라 불렀는데, 전설에 따르면 마을 앞산 모퉁이에 있던 사찰에 미륵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또 샘을 팠더니 땅 속에서 미륵불이 나와 미륵이 저절로 생겼다는 데서 이렇게 불렀다고도 한다. 한편 낙현마을의 유래는 1455년(세조 1) 윤...
-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역사적·예술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문화재 가운데 일정한 형태를 지닌 것을 통틀어 이르는 말. 1995년 현행 문화재 보호법에 따르면 문화재는 유형문화재와 무형문화재, 기념물, 민속자료로 분류된다. 유형문화재는 건조물·전적(典籍)·서적·고문서·회화·조각·공예품 등 유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상 또는 예술상 가치가 큰 것과 이에 준하는 고고자료(考...
-
양천허씨를 본류로 하고 남원 이언을 본관으로 하는 동계 혈족. 본관이 양천인 허규(許珪)는 서울의 목동에서 대대로 세거하였다. 할아버지는 세조 때 야인 정벌에 공을 세운 무신 허형손(許亨孫)이고, 아버지는 진사 허윤관(許允寬)이다. 효령대군의 손자 고림군(高林君)의 사위 양자윤(梁自潤)의 아들인 양의(梁艤)의 매제가 되었다. 허규는 결혼을 계기로 그의 처가가 사는 남원...
-
조선 초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정인지(鄭麟趾)는 조선 초기 문신으로 대통력(大統曆)과 역법(曆法)을 개정하였으며 천문·아악 등에 관한 많은 책을 편찬했다. 김종서(金宗瑞) 등과 『고려사(高麗史)』를 찬수하였고,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에 공이 컸다. 안지(安止)·최항(崔恒) 등과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지음으로써 국어·국문학사에 크게 기여하였다. 본관은 하...
-
최도범 할아버지의 연세는 74세로 계유생(1933년)이다. 태몽은 특별한 것이 없다. 다만 탯자리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는 태어날 때 목에 흰 줄(탯줄)을 감고 나오면 구육(狗肉, 구탕, 보신탕)을 안 먹으면 좋다는 말이 마을에 전해오고 있다. 최도범 할아버지 부친의 성명은 최성술(成述)[삭녕최씨]이고, 모친은 최수모(秀模)[경주최씨]이다. 부모가 같이 최씨이지만 본관이 서...
-
조선 전기의 왕족.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示+甫)[1396~1486]는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였고, 세종·문종·단종·세조·예종·성종 모두에게 극진한 존경과 대우를 받았다. 또한 효령대군은 불교를 숭상하고 선가(禪家)에 적을 두면서 많은 불사를 주관한 까닭에 유학자들로부터 비판도 많이 받았지만 불교의 보호와 진흥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본관은 전주. 초명은 이호(李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