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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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近德,遠德-其他地域-古墳群 |
영어공식명칭 | Ancient Tombs of Geundeok, Wondeok and so 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남북국 시대 |
집필자 | 이상수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1년 - 고분군B 가톨릭관동대학교 박물관 발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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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1~2012년 - 옥원리 고분군 해동문화재연구원 발굴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1년 - 호산리 고분군 강원문화재연구소 발굴 |
소재지 | 궁촌리 고분군 -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 산80-3 일원 |
소재지 | 교가리 고분군 -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교가리 산162-1 일원 |
소재지 | 옥원리 고분군 -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옥원리 산114-1 일원 |
소재지 | 호산리 고분 -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호산리 산71-2 일원 |
성격 | 고분 |
양식 | 앞트기식돌방무덤ㅣ굴식돌방무덤|돌덧널무덤 |
[정의]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과 원덕면 지역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삼국시대와 남북국시대 고분군.
[개설]
근덕면 지역에는 궁촌리 고분군과 교가리 고분이 알려져 있다. 궁촌리 고분군은 마을 남쪽으로 흐르는 추천천(秋川川) 하류역의 북쪽에 형성된 해발 25~40m 안팎의 야트막한 3개의 구릉성 산지에 고분군 A·B·C가 각각 입지하여 분포하고 있다. 이 가운데 고분군 B는 2001년 가톨릭관동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6세기 중반~7세기 중엽에 해당하는 앞트기식돌방무덤[횡구식석실묘(橫口式石室墓)] 3기가 발굴 되었다.
원덕읍 지역에서는 옥원리 고분군과 호산리 고분이 알려져 있다. 옥원리 고분군은 2011년과 2012년 2년에 걸쳐 해동문화재연구원에 의하여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당시 조사 결과 A·B 조사 구역에서 6세기 중·후반~8세기 전반에 해당되는 앞트기식돌방무덤 30기,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橫穴式石室墓)] 1기, 배장 돌덧널무덤 3기, 돌덧널무덤[석곽묘(石槨墓)] 4기 등 모두 38기의 신라 고분이 대규모로 확인되었다. 지금까지 삼척 지역에서 발굴된 고분 유적 가운데 최대 규모로 확인된 첫 사례이다. A구역에서는 신라계 앞트기식돌방무덤을 포함해 모두 24기의 신라 고분이 확인되었다. 고분군은 산 중턱에 해당되는 해발 38~50m 선상에만 집중 조영되었다.
호산리 고분은 2011년 강원문화재연구소에 의하여 호산리성지(湖山里城址)의 외부 북서쪽 가지 능선 말단부에서 6세기 중후반경에 해당하는 신라 굴식돌방무덤 1기가 조사되었다. 삼척 지역에서 당시 최초로 발굴된 굴식무덤으로, 인근 옥원리 고분군에서 조사된 굴식돌방무덤과 구조상으로 비교된다. 이 밖에도 호산리 산41번지와 43번지 일원에서 신라토기편이 일부 수습되고 있어 또 다른 신라 고분들이 분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들 고분 외에도 기타 지역 고분으로는 교동[갈천동]고분이 알려져 있다. 이 고분은 삼척종합운동장에서 동쪽 후진마을 해수욕장으로 넘어가는 구릉상의 과수원 민가 주변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이미 파괴된 고분 유구 1기와 그 주변에서 다수의 신라토기편이 확인되고 있어 수기의 신라 고분이 집단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근덕면 지역의 궁촌리 고분군(宮村里古墳群)은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 산80-3 일원, 교가리 고분군(交柯里古墳)은 삼척시 근덕면 교가리 산162-1 일원에 각각 위치한다.
원덕읍 지역의 옥원리 고분군(沃原里古墳群)은 삼척시 원덕읍 옥원리 산114-1 일원, 호산리 고분(湖山里古墳)은 삼척시 원덕읍 호산리 산71-2 일원에 각각 위치한다.
[형태]
궁촌리 고분군에서 2001년에 조사된 고분들의 경우 봉분은 남아 있지 않았지만 모두 능선부의 완사면에 자리하여 등고선 방향과 일치되게 축조되었고, 입구는 하천을 바라보는 공통점이 있다. 돌방[석실(石室)]들은 풍화암반층을 파고 바닥을 고른 후 깬돌[할석(割石)]을 사용하여 네 벽을 5~7단 높이로 거의 수직상으로 쌓았으며, 각 벽의 틈새는 작은 돌을 끼어 넣어 고정시켰다. 바닥에는 작은 깬돌과 자갈돌을 점토와 함께 전면에 깔아 주검받침[시상(屍床)]을 마련하였다. 1호 무덤은 벽석 최상부에 큰 석재 한 장이 남아 있어 평천장 구조로 확인되었으며, 횡구부(橫口部)는 남단벽의 1단석 상부 전체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돌방은 길이, 너비, 높이가 3.44×1.34×0.7~1.0m이다. 2호 무덤은 남단벽의 1단석 상부 전체를 횡구부로 이용하고 그 외부에 2~3단 높이로 깬돌을 사용하여 폐쇄한 구조이다. 돌방은 길이, 너비, 높이가 2.4×1.43×0.7m이다. 3호 무덤은 남단벽 3단석 상부 좌측[서측]을 이용하고 폐쇄한 구조이다. 돌방은 길이, 너비, 높이가 2.44×1.3×1.0m이다. 출토 유물로는 목긴항아리[장경호(長頸壺)]·굽다리접시[고배(高杯)]·병모양토기·뚜껑 등 신라 토기류와 금동제굵은고리귀고리[금동제태환이식(金銅製太環耳飾)]·청동제허리띠장식[청동제과대금구(靑銅製銙帶金具)]·쇠화살촉[철촉(鐵鏃)]·쇠손칼[철도자(鐵刀子)] 등이 있다. 이 밖에 근덕면 교가리 산162-1번지 일대에서도 1998년 도로 공사로 인한 묘 이장 과정에서 신라 토기 5점이 발견·신고되어 알려졌다. 당시 출토된 유물은 토기항아리[토기호(土器壺)]·굽다리접시·뚜껑 등으로, 6세기 중엽~7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출토 지점과 유물 양상으로 보아 신라 고분이 다수 분포할 가능성이 있다.
옥원리 고분군에서 2011년에 조사된 A구역 내 돌방무덤[석실분(石室墳)]들은 A-17·19호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이 등고선과 평행하고, 평면 형태 역시 대부분 가로직사각형[횡장방형(橫長方形)]이다. 등고선과 직교하는 17·19호 돌방무덤만 세로직사각형[종장방형(縱長方形)]으로, 사각형[방형(方形)]은 1차 발굴 조사 당시의 A-6호 돌방무덤만 존재한다. 또 A구역 내 돌방무덤 구조는 기본으로 도랑[주구(周溝)] 및 둘레돌[호석(護石)], 봉토(封土) 등이 모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유실 및 삭평이 심하다. 돌방무덤 가운데 도랑이 확인되는 유구는 모두 7기 정도이다. 둘레돌은 확인되지 않았다. 출입구 시설이 확인된 것은 12~14호, 16호 돌방무덤 정도이다. 전체로 무덤구덩이[묘광(墓壙)] 조성은 풍화암반층을 ‘L’자 상으로 굴착하여 최하단석과 함께 많게는 2~3단 벽석까지 경사가 심한 장·단벽 쪽을 정치하여 뒤채움하며, 나머지 벽석부는 봉토와 함께 올리면서 축조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주검받침은 거의 대부분 전면주검받침으로 한 겹만 깔았지만 두 겹이 깔린 부분도 있다. B구역에서는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橫穴式石室墳)] 1기를 비롯하여 앞트기식돌방무덤[횡구식석실분(橫口式石室墳)] 11기, 배장 돌덧널무덤[석곽묘(石槨墓)] 2기 등 14기의 신라 고분이 확인되었다. 굴식인 B-12호 돌방무덤을 제외하고 모두 앞트기식으로 추정되고 있다. 출입구 시설은 중형분인 B-7호 돌방무덤과 굴식인 B-12호 돌방무덤에서 확인되었다. 이 밖의 대부분은 소형분(小形墳)에 속하며, 출입구가 설치되는 서쪽 또는 남쪽 벽석부의 경우 잔존 상태가 불량하거나 유실 및 교란이 심하여 관련 시설의 흔적이 확인되지 않았다. B구역 내 돌방무덤은 기본으로 도랑 및 둘레돌열이 모두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도랑은 2차 발굴조사에서 조사된 7기 가운데 6기에서 확인되었으며, 둘레돌이 확인된 돌방무덤은 A-7호분이 유일하다. 전체로 볼 때 무덤구덩이는 풍화암반층을 ‘L’자 상으로 굴착하여 최하단석 또는 많게는 2~3단 벽석의 후위까지 조성하여 경사가 심한 장·단벽 쪽 벽석을 고른 편이며, 나머지 벽석부는 봉토와 함께 올리면서 축조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추가장의 흔적이 유구상으로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주검받침은 대부분 전면 주검받침으로 한 겹만 깔았다. B-8호는 전면 주검받침이 아니라 피장자의 안치 공간에 맞게 주검받침을 깐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 유물이 확인되고 있지만 출토 빈도 수가 다소 낮은 것은 박장(薄葬)의 결과로 추정된다. 유물은 총 353점이 출토되었다. 여러 종류의 신라 토기를 비롯하여 허리띠장식·귀걸이[이식(耳飾)]· 도자· 청동방울 등 금속류가 있다. 이 밖에 옥원리 산116번지와 산162번지 일대에서도 다수의 신라 토기편과 추정 고분 유구의 석재들이 일부 확인되고 있어 또 다른 신라 고분들이 분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짙다.
호산리 고분에서 2011년에 조사된 고분 유구의 장축 방향은 남향·북향이며, 평면은 사각형에 가까운 직사각형이다. 돌방의 크기는 길이, 너비, 높이가 2.6m×2.2m×0.6m이다. 연도부는 좌측 편에 치우쳐 설치하였다. 높이와 너비는 약 40㎝×약 50㎝이다. 바닥은 작은 깬돌과 냇돌을 이용하여 전면 주검받침을 마련한 것으로 보이지만 북쪽으로 ‘ㄱ’ 형태의 2~3㎝ 정도 깬돌로 채워진 주검받침으로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굽다리접시·뚜껑·옥류·가락바퀴[방추차(紡錘車)]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삼척시 근덕면과 원덕읍 일대에서 지금까지 확인 조사된 고분들은 대부분 6세기부터 8세기 3세기에 걸쳐 축조된 신라 무덤이다. 당시 삼척[실직]의 직접 관할 아래에 있던 거점 지역과 소단위 지역 중심 계층의 무덤일 가능성이 짙다. 삼척시의 대표 고분 유적인 갈야산 고분군 및 사직동 고분군, 동해 추암동 고분군 및 구호동 고분군 등과 함께 영동 지역 신라 고분의 묘제 구조·양상·변천 과정 파악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한편 6세기 이후 신라의 지방으로의 고분 문화 확산과 지역의 지배 방식 일면을 살필 수 있는 유의미한 고고학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