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10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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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寒食 |
영어공식명칭 | Hansik |
이칭/별칭 | 한식날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집필자 | 안광선 |
[정의]
강원도 삼척 지역 한식 풍속의 특징.
[연원 및 변천]
한식 유래와 관련해서 두 가지 설이 있다. 중국에서는 춘추시대 진나라 문공의 충신 개자추(介子推)가 문공의 사과와 설득에도 불구하고 면산에 숨어서 나오지 않고 이날 불에 타서 죽었기 때문에 불을 쓰지 않는다고 전한다. 다른 하나는 개화(改火) 의례에서 유래한다는 설이다. 선인들은 모든 사물에는 생명이 있으며, 생명이란 오래되면 소멸하기 때문에 갱생이 주기로 필요하다고 여겼다. 불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오래된 불은 생명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여겨서 오래 사용한 불을 끄고 새로 불을 만들어 사용하는 개화 의례, 즉 옛 불씨를 끄고 새로운 불씨를 피우는 과정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이 언제부터 한식을 명절로 여겼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070년(고려 문종 24)에 한식과 연등 날짜가 겹쳐서 연등을 다른 날로 바꾸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고려 전기에는 한식이 중요한 명절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에는 5절사라 하여 설, 단오, 추석, 동지와 함께 한식날 제사를 지냈지만 요즘에는 묘지에 가서 사초[무덤에 떼를 입혀서 잘 다듬는 일]를 하는 것으로 그치는 집안이 많다. 이때 쯤 되면 바람이 심하기 때문에 불조심을 촉구하는 뜻이 있다. 특히 삼척을 비롯한 영동 지역은 한식을 전후해 높새바람으로 인한 강풍이 불고 메마른 날씨가 계속되면서 산불이 나는 등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아 성묘객들이 찾는 한식 즈음에는 비상 경계 상태에 들어간다.
[절차]
지역마다 약간의 차이를 보이지만 대동소이하다. 기일 하루 전에 제물을 마련한다. 과일 4품과 채소가 10여 그릇이며, 밥과 국이 각 한 그릇이다. 당일 새벽에 묘소로 가서 재배하고 자리를 펴서 진설을 한다. 생선·고기·미식·면식의 네 쟁반을 자리 남쪽 끝에 진설하고, 잔반과 시저는 북쪽에 진설한다. 참신, 강신, 초헌, 아헌, 종헌, 사신, 철상의 순서대로 거행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한식은 우리나라에서는 큰 명절이었다. 전 가족이 모여서 성묘를 가고, 묘제를 지냈다. 분묘가 멀 경우에는 사당에서 지내기도 하였다. 한식이나 청명 때 성묘하는 풍습은 고려시대 기록에 등장한다. 이때 이미 헌 산소의 손질도 함께하였음이 확인된다. 한식을 상징하는 행사가 개사초고제(改莎草告祭)이다. 개사초는 산소의 주인이 놀라지 않도록 하고, 다음으로는 토지신에게 개사초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개사초를 마친 후에는 위안묘제(慰安墓祭)를 올려 산소의 주인으로 하여금 안정을 되찾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처럼 복잡한 절차를 약하거나 생략한 채 떼를 입히고 산소를 손질하는 것으로 그치고 있다.
이처럼 한식이나 청명 때 성묘를 가서 산소와 그 주변의 풀을 베고 떼를 입히는 것은 거의 전국 풍속이다. 한식이나 청명 때 개사초를 하는 이유는 이때가 식물이 잘 자라는 시기이고, 이날은 무슨 일을 해도 탈이 없는 날 또는 손 없는 날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한겨울에 얼어붙은 흙이 한식과 청명 전후가 되면 녹아서 부서져 내리기 때문에 산소의 손질이 필요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여름 우기에 빗물이 산소 안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는 현실 상의 이유가 개사초 풍습을 유지시켜 온 것이다.
묘소가 멀거나 부득이 오랫동안 성묘하지 못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아주 그만둘 수는 없기 때문에 가까운 노복으로 하여금 포와 과일 같은 종류만 챙겨서 제사를 지내게 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