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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1075
한자 三陟-
영어공식명칭 Samcheok Gi-tug-of-war
이칭/별칭 삼척 게줄다리기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놀이/놀이
지역 강원도 삼척시
집필자 김도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멸 시기/일시 1936년 - 삼척기줄다리기 일제에 의해 중단
재현 시기/일시 1973년 - 삼척기줄다리기 복원
문화재 지정 일시 1976년 6월 15일연표보기 - 삼척기줄다리기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삼척기줄다리기 강원도 무형문화재 재지정
놀이 장소 엑스포광장 - 강원도 삼척시 성남동 지도보기
놀이 장소 척주로 - 강원도 삼척시 척주로 지도보기
주관 단체 삼척정월대보름제위원회[삼척문화원] - 강원도 삼척시 오십천로 408 삼척문화원 지도보기
성격 전통놀이
노는 시기 정월대보름
문화재 지정번호 강원도 무형문화재

[정의]

강원도 삼척에서 정월 대보름에 몸줄[용줄]에 곁줄인 기줄[게줄]을 매어 이를 당기는 줄다리기.

[개설]

삼척에서는 ‘게’를 ‘기’라 하고, 줄다리기의 줄이 외형적으로 ‘게’를 닮았고 ‘게’가 귀신을 물리치는 기능을 지녔다는 점에서 ‘기줄다리기’라 하였다고 전한다. 전승집단의 규모면에서 본다면 삼척기줄다리기부내말곡으로 나누어 연행되었고, 이 과정에서 인근 미로, 북평, 근덕 등에 있는 주민들도 참여하였으므로 ‘열린 고을형’으로 볼 수 있고, 또한 ‘큰줄다리기’로도 볼 수 있다. 다만 정월 대보름 전에 각 마을별로 속닥기줄, 중기줄다리기가 있었는데, 이는 마을 내에서 이루어졌으므로 ‘닫힌 마을형’이면서 ‘골목줄’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승 형태는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규모에서 큰 것으로 확대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그 규모가 연속성을 지닌 확대형으로 볼 수 있다.

시기적인 면에서 본다면 정월 초 마을별로 속닥기줄, 중기줄을 하다가 대보름날 밤에 기줄다리기를 한다. 연행(演行) 공간은 오십천사대광장에서 행해졌는데, 이곳은 모래도 일부 있고 자갈밭인 곳도 있었으나 이에 개의치 않고 연행되었다고 한다. 1973년 기줄다리기가 복원된 이후 사대광장에서 연행하다가, 사대광장이 매립된 이후 중앙통 주도로나 오십천 고수부지로 옮겼으나, 지금은 엑스포 광장에서 삼척기줄다리기를 연행하고 있다.

줄의 형태면에서 삼척기줄다리기는 암줄과 숫줄로 나뉘어진 쌍줄 형태로써 세부적으로는 몸줄[용줄]에 곁줄[게줄, 기줄]을 매어 이 곁줄을 당기는 형태이다. 동네에서 행하는 속닥기줄이나 중기줄은 외줄이었다고 보여진다.

편 구성은 지역별로 편을 가르는데, 오십천[또는 삼척 읍성]을 기준으로 부내(府內)와 말곡(末谷)지역으로 나누어 연행된다. 점풍(占風)[점을 치는 일과 풍수보는 일]과 관련하여 부내는 해안지방·여성을 상징하고, 말곡은 산곡지방·남성을 상징한다. 부내가 이기면 해사(海事)가 풍년이고, 말곡이 이기면 농사가 풍년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줄의 처리 방식은 서낭당에 1년간 모셨다는 증언이 있는 것으로 보아 1년 보존형의 형태를 띠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줄은 짚을 주재료로 하는데 몸줄을 만들 때 끊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정라진에서 만드는 몸줄에는 칡을 사용하여 속줄을 만든 후 겉에 새끼줄로 감싸는 형태로 만들었다고 한다.

줄다리기에 앞서 행해지는 앞놀이는 경남 창녕의 골목 줄다리기와 같이 정월 초에 마을별로 속닥기줄과 중기줄다리기가 행하여졌고, 줄을 만드는 과정에서 편싸움은 아니지만 줄다리기 줄을 만드는 술비놀이가 행해졌다. 그리고 기줄다리기 당일 각 마을별로 줄을 만들어 삼척 시가지를 행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농악을 울리며 다녔는데, 조비농악이 유명하다. 삼척에서의 뒷놀이는 줄다리기 후 패자는 조용히 사라지고, 승리한 편에서는 풍악을 울리며 즐겁게 놀았다고 한다.

공동체 신에 대한 제사와의 관계에서 삼척기줄다리기는 고을형 쌍줄로서 주로 선제사 후놀이형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기원 중의 하나가 선농제를 지낸 후 마을 사람들끼리 즐기는 가운데 줄다리기가 행해졌다는 주장이 있고, 줄다리기에 참여하기 전에 마을 서낭당에서 제사를 지낸 후 기줄다리기에 참여하는 마을도 있기 때문이다.

[연원]

삼척기줄다리기 의 유래는 4가지로 추정한다. 첫째, 제방 축조, 이사(里社) 설치 후 ‘제사→풍년 기원 축제’ 등과 관련한 것이다. 고로(古老)들은 조선현종 때 삼척부사였던 허목(許穆)이 이 지방에 저수지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척주지(陟州誌)』에서 관련 내용은 ‘북평제언기, 1661년(현종 2) 7월 큰 홍수와 1662년(현종 3) 큰 폭우로 유실된 전토나 제방 복구 사업 진행, 각 동리에 향약문 고유(告諭)’를 그 논거로 제시하고 있다. 둘째, 정월 대보름 풍흉과 관련한 점풍 행사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부내(府內)[해안지방. 여성 상징]와 말곡(末谷)[산곡지방. 남성 상징]이 겨루는데, 부내가 이기면 어업이 풍년이고, 말곡이 이기면 농사가 풍년이라 믿는다. 그래서 여성이 이기길 기대한다. 부내는 부사의 부인이 응원하고, 말곡은 부사가 직접 지원한다. 셋째, 마을에 부과된 부역 전가를 위해 연행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당시 부역은 삼척읍성·포진성 수리·만년제·방수제 등의 축조가 주조를 이루었다. 넷째, 귀신을 쫒기 위해 연행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이는 기줄이 게 모양으로서 게는 귀신을 쫓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고, 경기장인 사대광장에 잡귀가 많은데, 이는 삼척포진관이 영동지구 9개군의 죄인을 이곳에서 처형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전승되다가 1936년 일제에 의해 중단된 이후 1973년 ‘삼척민속놀이위원회’가 구성되어 정월 대보름에 ‘기줄다리기’를 주축으로 삼척읍사대 광장에서 삼척민속대제전이 거행되면서 재현되었고, 1976년 6월 15일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으며, 2015년 12월 2일 유네스코 제10차 무형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우리나라에서 연행되는 줄다리기 5건[기지시줄다리기, 영산줄다리기, 남해선구줄끗기, 밀양감내게줄당기기, 의령큰줄땡기기] 및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의 줄다리기 종목 등과 더불어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강원도 무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놀이 도구 및 장소]

삼척기줄다리기 는 원래 사대광장에서 하였으나 사대광장은 남산절단공사 이후 삼척 시내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메웠다. 이에 현재 삼척기줄다리기엑스포광장에서 한다.

삼척기줄다리기 에 사용되는 기줄은 쌍줄이며, 각 줄은 용두[마두], 용줄[몸줄], 기줄[게줄], 꼬리줄, 옹이[비녀목]로 구성되어 있다.

용두[마두]와 용줄[몸줄], 꼬리줄 만드는 과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술비통을 이용하여 직경 30㎝, 길이 100m 정도인 마을줄을 14가닥[암줄과 숫줄 제작용 각각 7가닥 씩] 제작한다. 그리고 마두와 몸줄은 마을줄 7줄을 묶은 형태를 기본 골격으로 하여, 기줄 12가닥을 그 주위에 둘러서 만드는데, 이 때 용두[마두]와 용두에서 용줄 10m까지는 새끼줄을 촘촘하게 감아서 마무리한다. 그리고 꼬리줄을 용줄의 뒷 부분에 이어지게 만드는데, 구체적으로 꼬리줄 총 길이는 30m 정도, 용줄 끝에서 점차 직경이 줄어들면서 꼬리줄 10m 정도에 이르러 직경 10㎝ 정도까지 줄어들게 제작하며, 꼬리줄 끝 부분 길이 20m는 직경 8~10㎝ 정도로 제작하여 이 부분을 20명 정도의 인원이 당길 수 있도록 제작한다. 이에 꼬리줄을 위한 줄은 술비통을 이용하여 직경 8~10㎝, 길이 130m 정도의 줄 2가닥[암줄과 숫줄 제작용 각각 1가닥 씩]을 제작한다.

기줄은 술비통을 이용하여 직경 8~10㎝, 길이 130m 정도인 기줄을 24개를 제작[암줄과 숫줄 제작용 각각 12줄 씩 배치]하여 기줄이 용두를 돌아서 반대편으로도 이어져 나오는 형태로 만든다. 이 때 기줄 1줄 당 20여명이 당기는 것을 기준으로 하며, 이에 한쪽 기줄 길이는 20m, 용줄에서 기줄과 기줄 간격은 5m 정도를 유지하여 만든다.

그리고 용두[마두], 용줄[몸줄], 기줄[게줄], 꼬리줄에 새끼줄을 기본으로 칡줄을 삽입하는 형태로 제작한다. 옹이[비녀목]는 직경 35㎝ 길이 3m가 넘는 향나무나 박달나무 또는 소나무를 이용하여 만든다.

[놀이 방법]

삼척기줄다리기 는 다음 과정으로 진행된다.

(1) 입춘일 선농단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선농제(先農祭)를 지낸 후 농악을 앞세워 시내를 돈다.

(2) 삼척기줄다리기 전의 줄다리기: 정월 2, 3일부터 속닥기줄이라 하여 부락 단위로 새끼줄을 모아서 아이들끼리 하는데, 하룻밤에 3, 4회 정도를 정월 5, 6일까지 지속하였다. 이 줄다리기에 어른들은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월 7, 8일경에는 중기줄다리기가 행하여 졌는데, 청소년들이 주동이 되어 규모가 속닥기줄보다 커서 하루밤 1, 2회 정도 겨루는데, 정월 10일경 일시 중단하여 대보름 기줄다리기 준비를 하였다고 한다.

(3) 삼척기줄다리기 본행사 준비: 임원을 구성하는데, 임원은 대표 파장(派將) 1인, 부파장(副派將) 1인, 보통파장(普通派將) 3~4인, 각리 파장(各里 派將) 1인씩으로 구성되는데, 이들은 기본 임무 이외에도 원근 각 지역을 순방하여 세배를 드리고 공식적인 초청 절차를 밟아 원군을 초청한다. 기줄다리기를 하는 정월 대보름에는 읍 소재지 동에서 술, 오곡밥, 약밥을 지어 당일 자기편 전사들을 접대하였다.

다음에 줄을 준비하는데, 이는 각 동리마다 준비한다. 크기는 한뼘 이상이고, 길이는 50발 이상으로 줄을 틀 때 술비통을 이용한다. 술비통을 이용하여 줄을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면, 새끼줄, 칡줄을 구멍을 통하여 세 가닥이 한데 모여 5㎝의 줄이 되고, 이 줄을 다시 세 가닥을 한데 모아 틀어서 한 줄로 만드는 과정을 반복한다. 줄을 틀 때 풍악을 울리면서 노래를 부르며 작업을 하는데, 이를 술비통 노래라 한다.

정월 대보름 당일에 본부에서 대표파장이 말을 타고 참모들과 함께 의관정제하고 아침부터 오후 5시경까지 각 지역에서 오는 자기편 전사들을 맞이한다. 이 때 각 동리 전사들은 동리 파장을 마두에 올려 세우고 앞에 부락기와 영기를 세우고, 농악대 - 가장 행렬 - 남녀노소 순서로 줄을 메고 뒤를 따른다. 각 동리별 전사들의 집결 장소는 말곡면은 성내리[백호기, 세로기, 농기, 영기, 부락기]이고, 부내면은 성저리[성 밖]에 집결[청룡기, 가로기, 농기, 영기, 부락기]하였다. 집결 후 시가 행진을 하였는데,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기줄다리기 줄을 최종 준비하는 과정을 보면, 각 마을에서 가져온 줄을 사대광장에 모아 각 편별로 전문(役軍)들이 노래 부르며 작업을 하였다. 이 때 다른 장정들은 자기 소속을 표시하는 기를 앞세워 불을 밝히면서 농악대를 앞세워 밤 11시까지 시가지를 누비고 다녔다. 기줄 제작 방법은 길이를 조절하여 마두와 본체 줄을 만드는 것으로 양편의 기줄을 맞대고 타래를 지우는데, 30~40분 정도 걸린다. 약 5~6시간 작업하여 자정쯤이면 줄을 완성할 수 있었다. 제작된 기줄은 용두(龍頭)[또는 마두(馬頭), 줄머리, 대가리]에서 10m 정도까지 지상에서 2m 정도이고, 길이는 약 200m이다.

(4) 삼척기줄다리기 본행사 진행: 달빛, 광솔불 아래에서 징을 신호로 남녀 불문하고, 인원 제한없이 줄을 당겼는데, 지휘 체계는 마두에 파장이, 중간에 부파장, 뒤에 보통 파장이 배치되어 대표파장의 신호에 의해 일사분란한 지휘 체계를 구축하여 줄다리기를 하였다. 이 때의 지휘 신호는 기를 눕히면, 줄을 바닥에 까는 것이고, 좌우로 흔들면 당기지 않고 힘만 주라는 의미였으며, 동서로 흔들면 기에 맞추어 구호를 외치며 당기라는 의미였다.

서편은 말곡이고, 동편은 부내로서 모래를 발로 파기도 하고, 여자들은 치마에 돌을 담기도 하여 무게를 늘려 줄다리기에 나섰는데, 술을 먹으며 당기기도 하였다고 한다. 3~4시간 흘러 새벽 4~5시경이면 끝났는데, 승부를 내기는 매우 어려웠다고 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삼척기줄다리기 는 기줄다리기만을 위한 놀이가 아니라 연행과정에서 술비놀이, 삼척 조비농악과 같이 다른 놀이 문화가 함께하는 종합적인 놀이이다. 줄다리기는 주로 벼농사 문화권에서 행해지는데, 삼척기줄다리기는 대규모로 행해지는 줄다리기의 상한선으로 볼 수 있고, 밀양의 게줄과 같이 양쪽에 8가닥이고 원줄에 칡줄을 넣는다는 점은 나름대로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극소에서 극대로 발전하는 놀이로서, 귀천·빈부의 차별없이 남녀가 혼연일체가 되어 참여하여 새해맞이를 하는 놀이로서 지역민 전체의 단합과 풍년·풍어를 기원하는 확대 지향의 대보름 놀이이다.

또한 다른 지역과는 달리 논이 아닌 자갈밭에서 거행한다는 점과 동부를 여성, 서부를 남성으로 상징하면서 어느 쪽이 이기든 풍년·풍어가 되므로 대립 관념이 없다는 것은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점으로 볼 수 있다.

[현황]

삼척기줄다리기 는 1936년 일제에 의해 중단된 이후 1973년 ‘삼척번영회’에서 주관한 ‘정월대보름제’에 ‘기줄다리기’를 주축으로 삼척읍사대광장에서 삼척기줄다리기 재현과 함께 본격적으로 삼척정월대보름제가 시작되었다. 2007년 삼척문화원에 삼척 정월대보름제위원회가 구성되어 그 명칭을 삼척 정월대보름제라 정하여 삼척기줄다리기를 중심으로 산신제·사직제·천신제·해신제와 함께 술비놀이, 각종 민속 행사 등으로 축제를 구성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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