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1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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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美谷里 |
영어공식명칭 | Migok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미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지훈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미곡리(美谷里)는 지역 계곡에 풍류가 있어서 선비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미곡이란 시조(時調)와 학이 있듯 아름다운 계곡이라는 의미로 통칭하여 왔다. 자연마을로는 미륵당이·수구동·조일말·학당이 등이 있다. 미륵당이는 조일말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모퉁이에 미륵이 있어서 붙여진 지명이다. 수구동은 임진왜란 때 피난하였던 수백 명이 왜적에게 피살되어 피가 내를 이루었다 하여 피숫골 또는 피수동이라 하다가 이름이 흉하다 하여 수구동으로 개명하였다. 조일말은 미곡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제지곡 또는 지곡이라 불린다. 학당이는 미륵당이 동북쪽의 산속에 있는 마을로 고려 말 김휴가 살면서 학당을 세우고 후진을 양성하였다고 하여 학당이라 불린다.
[형성 및 변천]
미곡리는 조선 후기에는 충청남도 전의군 동면의 구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웃 마을을 병합하여 미곡리라 하였고 충청남도 연기군 전동면에 편입되었다. 연기군 전동면에 속하였다가 2012년 7월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으로 변경되었다.
[자연환경]
미곡리의 북쪽에는 약 460m의 운주산이 있다. 북동쪽에 비교적 높은 산지가 발달하여 있고 남쪽으로 가면서 고도가 조금씩 낮아진다. 남쪽에는 조천이 북에서 남으로 흘러가며 만든 충적지(沖積地)가 소규모로 발달하여 있다. 미곡2리에서 발원한 소지류가 남쪽으로 흘러가 조천에 합류한다. 소지류가 흘러가는 개석곡(開析谷)[하천의 침식 작용으로 생긴 깊은 골짜기]·미곡리 북서쪽에서 북남쪽으로 발달한 개석곡·개미고개골에서 동서로 발달한 개석곡을 제외하면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현황]
2020년 8월 기준 총 148가구로 279명이 살고 있다. 미곡리에는 운주산성이 있고 국도 제1호와 경부철도가 지나간다. 운주산 중턱에 있는 고산사에서 1994년부터 매년 음력 9월 8일 전후로 백제 멸망기에 백제 부흥을 바라며 싸우다 죽은 영혼을 달래는 고산제를 올린다. 4월 15일에는 원래 비암사에서 올리던 백제대제[백제부흥운동을 하다 죽은 왕과 대신 그리고 7세 부모[조상]의 영혼을 달래는 제]를 세종문화원 주최로 올린다. 300~400m 안팎의 산지가 대부분이고 산세가 험하여 지역적으로 외진 곳이 많으며 구릉지대에 밭이 조성되어 있다. 미륵당 마을에서 미륵제를 매년 정월 14일에 올린다. 조일말에서는 마을 입구에서 느티나무제를 정월에 지낸다. 학당이마을에는 안동김씨 재실 학당재와 김휴 신도비와 유허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