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3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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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戰鬪 |
영어공식명칭 | Battle of Gaemigogae |
이칭/별칭 | 전의전투,전의지구 전투,전의·조치원 전투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완호 |
[정의]
1950년 6·25전쟁 당시 개미고개를 중심으로 북한군 2개 사단과 미군이 벌인 전투.
[개설]
개미고개는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과 전동면 사이에 있는 고개로, 6·25전쟁 당시 개미고개를 중심으로 전의면·전동면·조치원읍 일대에서 미군이 북한군을 맞아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다. 현재 자유평화의 빛 위령비가 설치되어 있으며, 매년 7월 11일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역사적 배경]
1950년 6·25전쟁 발발 이후 북한군이 남침하자 정부는 대전으로 후퇴하고 천안이 함락되었다. 미군은 대전을 지키기 위하여 금강을 방어선으로 삼아 전투를 진행하게 되었다.
[경과]
7월 7일 미군 제24사단 제21연대는 사단장인 윌리엄 딘 소장의 “조치원 부근의 진지를 점령하라”라는 명령을 받고 7월 8일 개미고개 좌우에 진지를 구축하였다. 7월 9일 아침 미군 제24사단 제21연대 3대대는 박격포로 적 전차 5대를 불태우는 전과를 올렸다. 7월 10일 오전 북한군은 미군 진지를 전면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미군은 M24 전차를 사용하여 전의 부근에서 북한군과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전차 2대가 파괴되고 후퇴하였다. 7월 11일 북한군이 안개를 이용하여 다시 전차를 앞세워서 미군 진지가 있는 개미고개를 공격하였다. 12시간에 걸친 전투 끝에 제24사단 제21연대 미군 667명 중 517명이 희생되었다.
[결과]
개미고개 전투 끝에 미군 제24사단 제21연대 1대대는 205명의 보충병을 받아 조치원 방어에 나섰으나 북한군이 개미고개를 넘어 오봉산으로 이동하고 7월 12일 새벽 조치원으로 진격하자 7월 12일 저녁 금강을 건너 철수하였다.
[의의와 평가]
개미고개 전투는 미군 제24사단 제21연대의 인력과 장비에 막대한 피해를 주었지만 북한군의 남하를 지연시키는 효과를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