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5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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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水原白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윤윤희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662년(현종 3) - 백시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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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724년(경종 4) - 백시유 사망 |
입향 시기/일시 | 1600년 후반 - 백시유 생몰년으로 추정 |
분관|분종 시기/일시 | 1500년대 - 문경공파 백인걸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600년 후반 - 백시유 장군면 평기리에 입향 |
본관 | 수원백씨 본관 - 경기도 수원시 |
입향지 | 수원백씨 입향지 -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평기리 |
세거|집성지 | 수원백씨 세거지 -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평기리 |송문리|대교리 |
묘소|세장지 | 백시유 묘소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내촌리 |
성씨 시조 | 백우경 |
입향 시조 | 백시유 |
[정의]
백우경을 시조로 하고 백시유를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백우경(白宇經)을 시조로 하고 백시유(白時裕)[1662~1724]를 입향조(入鄕祖)[마을에 들어와 터를 잡은 성씨]로 하는 수원백씨 문경공파(文敬公派)는 1600년대 후반 세종 지역인 장군면 평기리에 입향한 이래 지금까지 일가를 이루며 살고 있다.
[연원]
수원백씨의 시조 백우경은 중국 당나라 때의 소주蘇州) 출신이다. 벼슬이 첨의사(僉議事)와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이르렀다. 간신들의 모함으로 당을 떠나 780년(선덕왕 1) 신라로 건너왔다. 수원백씨는 이후 신라 경명왕 때 중랑장(中郞將)을 지내고 상장군(上將軍)에 증직(贈職)[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추증(追贈)하던 일]된 백창직(白昌稷)을 중시조로 삼아 29개로 분파되어 세계(世系)[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계통]를 잇고 있다.
[입향 경위]
장군면 평기리의 수원백씨 입향조는 정확하지 않지만 백시유로 삼고 있다. 백시유의 묘는 평기리에서 멀지 않은 정안면 내촌리 남산에 있고, 아들 백상후(白尙厚)[1685~1754]를 비롯한 후손들의 묘가 장군면 일대에 조성되어 있다. 수원백씨의 정착은 당시 평기리에 번성하던 한산이씨 집안과 관련이 있어서 이루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이웃한 송문리, 대교리 등지에 살면서 수원백씨 문경공파를 형성하였다.
[현황]
2019년 5월 수원백씨는 평기리 8가구, 송문리 5가구, 대교리 3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연기군의 수원백씨는 1985년 117가구 462명, 2000년 131가구 401명으로 확인된다. 2015년 세종특별자치시의 수원백씨는 1,360명으로 남자 705명, 여자 655명이다.
[관련 유적]
장군면 평기리 수원백씨는 2019년 6월 현재 매년 음력 10월 15일에 지내 오던 시제를 음력 10월 15일 직전 공휴일로 옮겨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