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5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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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順川朴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윤윤희 |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439년(세종 21) - 박안생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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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 시기/일시 | 1400년대 초반 - 박안생 전의면 관정리 입향 |
입향 시기/일시 | 1600년대 초반 - 박영길 남면 고정리 입향 |
입향 시기/일시 | 1800년대 - 박해문 연서면 월하리 정착 |
본관 | 순천박씨 본관 - 전라남도 순천시 |
입향지 | 순천박씨 입향지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관정리 |
세거|집성지 | 순천박씨 세거지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관정리 |고운동|연서면 월하리 |
묘소|세장지 | 박안생 묘소 -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송정리 산4 |
묘소|세장지 | 한석정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관정리 박동마을 |
성씨 시조 | 박영규 |
입향 시조 | 박안생 |
[정의]
박영규를 시조로 하고 박안생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박영규(朴英圭)를 시조로 하고 박안생(朴安生)[?~1439]을 입향조로 하는 순천박씨는 1400년대 초반 세종 지역인 전의면 관정리에 입향한 이래 600년 동안을 세거해 온 전의 지역의 대표 성씨이다.
[연원]
순천박씨의 시조 박영규는 고려 태조를 도운 개국공신으로, 삼중대광좌승(三重大匡左丞)에 올라 승주군(昇州君)에 봉하여졌다. 이후 고려 충숙왕 때 보문각 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지낸 박숙정(朴淑貞)을 중시조로 하여 19개로 분파되어 세계(世系)[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계통]를 이어 오고 있다.
[입향 경위]
순천박씨 입향조 박안생은 중시조 박숙정의 손자로 의영고사(義盈庫使)와 목사(牧使)를 지냈고,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追贈)[종2품 이상 죽은 벼슬아치의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에게 벼슬을 주던 일]되었다. 박안생은 아버지 박원상(朴元象)과 회덕현[현 대전광역시 대덕구]에 살다가 당시 전의 지역의 유력 성씨인 안동김씨 김휴(金休)의 딸과 혼인하여 처가가 있는 전의면으로 옮겨 와 살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박안생의 아들들이 관정리 일대에 살고 있는 성씨들과 혼인 관계를 맺고 상·중·하 삼대부리(三大夫里) 마을과 박동(朴洞)이라는 지명이 생겨날 정도로 조선 전기에 이미 전의 지역은 순천박씨 세거지가 되었다. 후손으로는 세조 때 단종 복위 운동에 연루되어 화를 입고 충절과 절의를 지킨 박안생의 아들 박중림(朴仲林)[?~1456]과 손자 박팽년(朴彭年)[1417~1456]이 있다.
그 외 지역으로 순천박씨는 교리공파(校理公派) 후손 박영길(朴榮吉)이 1600년대 후반 남면 고정리[현 세종특별자치시 고운동]에 입향하였다. 또한 판서공파(判書公派) 박해문(朴海文)이 1800년대에 연서면 월하리에 정착하였다.
[현황]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연기군에 거주하는 순천박씨는 1985년에는 108가구 464명, 2000년에는 102가구 334명으로 확인된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세종특별자치시의 순천박씨는 646명이다.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 출범으로 고정리가 편입되면서 고정리의 순천박씨는 인근 지역으로 이주하여 살고 있다.
[관련 유적]
순천박씨 입향조 박안생과 관련된 유적으로 전동 박안생 묘가 있다. 전동면 송정리 산4에 위치하며, 세종특별자치시 기념물 제10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의면 관정리 박동마을에는 박중림과 박팽년이 살았다는 박골 골짜기가 있으며, 박중림이 건립하였다는 한석정(寒石亭)의 흔적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