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5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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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棹 |
영어공식명칭 | Yi Do |
이칭/별칭 | 이치,성절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이상호 |
추모 시기/일시 | 1996년 - 영사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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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이도 출생지 - 공주 |
거주|이주지 | 이도 거주지 - 공주 금강변 지역 |
부임|활동지 | 이도 부임지 - 공주 |
묘소|단소 | 이도 묘소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양안이길 14-7[유천리 산3-1] |
사당|배향지 | 경원사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운주산로 1410-1[유천리 496] |
사당|배향지 | 이태사 유허비 -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송정리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전의이씨 |
대표 관직 | 삼한삼중대광태사 전산후 |
[정의]
남북국시대와 고려 전기 세종 지역에서 활동한 고려의 개국공신.
[가계]
초명은 이치(李齒)이다. 충청도 공주목 전의현(全義縣)[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전동면 일대] 출신으로, 전의이씨(全義李氏) 시조(始祖)이다.
[활동 사항]
전의이씨 시조 이도(李棹)는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후백제 정벌을 도왔다. 후삼국 쟁패기에 왕건의 주력 부대가 금강(錦江)에 이르렀을 때 마침 홍수로 강물이 불어나 건너지 못하였는데, 당시 공주 지역 호족으로서 물길을 잘 알고 있던 이치가 고려군의 선봉대를 안내하여 급류의 강을 무사히 건넜고 기습에 성공하였다. 결과 후백제의 주력 부대가 큰 타격을 받아 금강 유역을 내주며 패배하게 되었다.
왕건은 이도의 공(功)으로 이겼다고 하여 ‘배를 젓는 노’를 뜻하는 도(棹)라는 이름을 내려주고 응양군대장군(鷹揚軍大將軍)으로 삼았다. 이도는 고려가 남북국을 통일한 이후 개국익찬공신(開國翊贊功臣)에 봉하여졌다.
이후 이도는 전의면 이성산(李城山)에 세거하며 전의를 성관(姓貫)[시조가 난 곳] 고을로 삼았고, 삼한삼중대광태사(三韓三重大匡太師) 전산후(全山候)에 봉하여졌다. 시호는 성절(聖節)이다.
남북국의 통일 후에 이도는 영지로 분봉된 전의현(全義縣)[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 거주하였다.
[묘소]
이도의 묘는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유천리에 있다.
추원단에는 승지 김영한(金甯漢)이 찬한 신도비가 건립되어 있으며, 묘소 근처에 경원사(景遠祠)가 있다.
[상훈과 추모]
1996년 이도의 묘 근처에 재실인 영사재(永思齋)를 건립하고 내부에 사당인 경원사를 조성하여 전의이씨 시조 이도를 비롯한 11위의 위패(位牌)를 봉안(奉安)하고 있다. 춘향 제례는 음력 3월 3일 봉향하고 있다. 또한 이도의 묘 근처에 추원단(追遠壇)을 만들어 추향 제례를 음력 10월 2일에 모시고 있다.
경원사는 1996년도 6월 23일 준공하여 총 3,100평 규모에 사업비 15억 원을 들여 건립하였다. 내사문, 숭의당, 운서제, 예동제, 일월당, 홍살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향후 후손들과 청소년들의 도덕 교육 수련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전의이씨 시조가 거주하던 이성(李城)의 성곽 안에는 이태사유허비가 있으며, 유허지(遺虛地)는 세종특별자치시 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어 지역의 문화유산으로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