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6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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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穆 |
영어공식명칭 | Im Mo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홍제연 |
출생 시기/일시 | 1371년(공민왕 20) - 임목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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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439년(세종 21) 추정 - 임목 금강변에 독락정 지음 |
몰년 시기/일시 | 1448년(세종 30) - 임목 사망 |
묘소|단소 | 임목 묘소 - 충청남도 부여군 |
사당|배향지 | 기호서사[세덕사] - 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부안 |
대표 관직 | 양양도호부사 |
[정의]
조선 전기 세종 지역 출신 문인으로 금강 상류에 독락정을 짓고 여생을 보낸 인물.
[개설]
임목(林穆)[1371~1448]은 세종특별자치시에 세거하는 부안임씨 집안의 입향조 전서공 임난수의 둘째 아들이다.
말년에 고향인 금강 상류[현 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에 독락정이란 정자를 짓고 여생을 보냈다.
[가계]
임목의 본관(本貫)은 부안(扶安)이며 아버지는 전서공 임난수(林蘭秀), 어머니는 용성부원군(龍城府院君) 최유(崔濡)의 딸이다. 4형제 중 둘째이다. 형은 임모(林摹), 동생은 임서(林叙)와 임흥(林興)이다.
[활동 사항]
임목은 태종조에 생원 진사가 되었고, 음사(蔭仕)[과거를 거치지 않고 조상의 공덕에 의하여 맡은 벼슬]로 승진하여 여러 고을 수령을 지내며 청렴 검소함을 지켰다. 비인감무(庇仁監務), 평양서윤(平壤庶尹)을 지냈는데 정사(政事)가 간결하고 청렴하였다고 한다. 음죽현감(陰竹縣監)으로 재임 중 처음으로 고을에 학교를 지었고, 홍주판관(洪州判官)으로 재임 중에는 어진 정치로 백성을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양양도호부사를 지내다가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제향(祭享)[제사]하는 가묘를 짓고, 금강 상류에 정자를 세워 ‘독락(獨樂)’이라 하고 한가히 스스로 즐기며 여생을 보냈다. 후에 선비들이 기호서사를 세워 제향하였다.
[묘소]
임목의 묘는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제천리 양미골에 있었는데, 세종특별자치시의 개발로 충청남도 부여군으로 이장하였다.
[상훈과 추모]
독락정이 있던 곳에는 현재 나성동독락정역사공원이 건립되어 있으며, 공원 안에 기호서사도 복원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