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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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安生 |
영어공식명칭 | Bak Ansaeng |
이칭/별칭 | 한석정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강경윤 |
몰년 시기/일시 | 1439년(세종 21) - 박안생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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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단소 | 박안생 묘소 -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송정리 산 4 |
사당|배향지 | 한석정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관정리 중대부 마을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순천 |
대표 관직 | 증이조판서 |
[정의]
조선 전기 세종 지역의 순천박씨 입향조.
[개설]
박안생(朴安生)[?~1439]은 전의면 관정리에 세거하는 순천박씨의 입향조이다. 사육신의 한 명인 박팽년의 조부로, 호는 한석정(寒石亭)이다.
[가계]
박안생은 순천박씨 1대조 박숙정(朴淑貞)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고려에서 공조전서를 지낸 박원상(朴元象)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로 남양군 언유(彦猷)의 딸이다.
전의 지역 순천박씨 입향조로, 안동김씨 학당(學堂) 김휴(金休)의 딸과 혼인하여 관정리 박동에 입향하게 되었다.
1670년(현종 11)에 간행한 순천박씨 족보[상주초보]에 박안생의 아버지인 박원상은 회덕 홍룡리에 살았다는 기록이 있어 박안생은 혼인 후 세거지를 옮긴 것으로 보인다.
박안생은 슬하에 4명의 아들을 두었다. 관정리 일대에 거주하고 있는 성씨들과 혼인관계를 맺으면서 장남 박맹림은 상대부, 박중림은 중대부, 박계림은 하대부에 거주하였기 때문에 상·중·하 삼대부리라는 마을 이름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전한다.
박안생의 사망 시기는 실록 자료로 유추할 수 있다. 『세종실록』 1439년 9월 27일 기사에는 “집현전 부수찬 박팽년이 사직을 청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집현전(集賢殿) 부수찬(副修撰) 박팽년(朴彭年)[박중림의 아들]이 상언(上言)[신하가 사사로운 일로 임금에게 글을 올리던 일]하기를, “신이 학술이 거칠고 소루하여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어, 한가한 데에 있어 글을 읽을 뜻이 있으나, 말씀을 하려다가 못한 지가 여러 해 되었습니다. 지금 아비[박중림]가 상(喪)을 당하여 전의현(全義縣)에 여막을 짓고 있고, 신의 어미도 따라가 있는데 또 병이 있사오니, 멀리 떠나서 벼슬하는 것이 어찌 마음을 잡을 수 있습니까……(중략)……하니,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여기에서도 박중림이 부친상을 당하여 전의로 내려가 시묘를 산다 하였으니 박안생은 1439년 9월 이전에 사망하였음을 알 수 있다.
[활동 사항]
박안생은 고려 후기에 출생하여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의영고사(義盈庫使)를 지냈으며, 아들 박중림이 이조판서에 오르게 되자 이조판서에 추증(追贈)[종2품 이상 벼슬아치의 죽은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에게 벼슬을 주던 일]되는 영예를 안았다.
관정리 중대부 마을에 한석정(寒石亭)을 창건하였는데, 정자 이름도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묘소]
전동 박안생 묘는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송정리에 있다. 고려시대 전통적인 묘제 형태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의미가 커서 2012년 12월 31일 세종특별자치시 기념물 제10호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