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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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孝子金漢鼎旌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쌍류리 102-2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고순영 |
건립 시기/일시 | 1922년 - 효자 김한정 정려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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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3년 - 효자 김한정 정려 중수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4년 09월 30일 - 효자 김한정 정려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9호 지정 |
현 소재지 | 효자 김한정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쌍류리 102-2 |
원소재지 | 효자 김한정 정려 - 충청남도 연기군 서면 쌍류리 102-2 |
성격 | 정려 |
양식 | 겹처마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1칸 |
측면 칸수 | 1칸 |
소유자 | 강릉김씨 문중 |
관리자 | 강릉김씨 문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9호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쌍류리에 있는 김한정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개설]
효자 김한정 정려는 김한정(金漢鼎)[1757~1804]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87년(고종 24)에 명정을 받아 건립되었다. 김한정은 본관이 강릉, 자는 중삼(重三), 호는 구곡(龜谷)이다. 현재 세종 지역인 충청남도 연기군 서면 청라리에서 태어났다. 이곡(梨谷) 김천익(金天益)[1350~1444]의 16대손이자 모암(慕菴) 김덕숭(金德崇)[1373~1448]의 15대손이다.
아버지 김상문(金尙文)[1722~1789]은 1876년(고종 13) 통정대부 호조참의에 증직되었고, 유덕룡의 딸인 어머니 강릉유씨[1726~1790]도 역시 같은 해 숙부인(淑夫人)에 증직되었다. 김한정의 부인은 동래정씨 정단의 딸로, 역시 김한정이 증직되던 해인 1876년 정부인(貞夫人)에 증직되었다. 김한정의 아들 김경희(金卿羲)[1794~1879]가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가 되면서 법에 따라 증직된 것이다.
김한정은 나이 스무살 무렵 구토병에 걸린 부모를 모시기 위하여 뒷산에 지초(芝草)를 심고 집앞의 영천에 생어(生魚)를 길러, 이것들로 부모를 봉양하였다고 한다.
[위치]
연서면 소재지에서 604번 지방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5㎞ 정도 가면 쌍류리 마을이 나온다. 쌍류초등학교에서 북쪽으로 난 샛길을 따라 골짜기 안으로 약 1.5㎞ 정도 들어가면 표고 200m 이상 높이의 산록 중단부에 송암마을이 있으며, 송암마을 입구에 효자 김한정 정려가 있다.
[변천]
『연기지』에는 충청도 유림들이 김한정의 효행을 조정에 고하여 1887년(고종 24) 가선대부 호조참판(嘉善大夫戶曹參判)에 증직되고 명정을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 후손이 소장하고 있는 교지(敎旨)를 살펴보면, 이러한 기록은 사실과 약간 다른 것으로 보인다. 김한정은 아들 김경희가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직에 이르자 법전(法典)에 따라 1876년(고종 13)에 이미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으로 증직 받는다. 따라서 명정은 증직을 받은 11년 후인 1887년(고종 24)에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명정을 받은 직후에는 정려를 건립하지 못하다가 약 35년 뒤 공의 5대손 김익래에 의하여 비로소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정려는 1922년에 건립된 것을 1983년에 개축 및 보수한 것이다.
[형태]
정려는 사각형 석재를 쌓아 만든 단 위에 계단식 주출입구를 만들어 세웠다.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겹처마에 맞배지붕 양식을 하고 있다. 정면에는 전체를 홍살로 돌렸으며, 3면은 시멘트벽으로 상단부만 홍살을 처리하였다. 시멘트 바닥에 화강석재의 8각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원주를 올렸다. 정려의 상단에는 1개의 화반대공을 올렸으며, 양 측면의 박공 밑에는 방풍판을 설치하였다. 정려 주변에 낮은 철책을 설치하였고, 전면에 출입문을 두었다.
[현황]
정려 내부 중앙에는 비석과 명정현판이 있다. 비석은 김한정의 5대손 김익래가 1922년에 세웠다. 비석은 높이 130㎝, 하단폭 36㎝, 상단폭 42㎝, 두께 20㎝의 규모로 호패형을 하고 있다. 비신 전면에는 ‘孝子贈嘉善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金漢鼎之閭’라고 음각되어 있다. 비석 상단부에는 명정현판이 걸려 있다. 가로 184㎝, 세로 38㎝ 크기의 현판에는 ‘孝子贈嘉善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金漢鼎之門 上之二十四年丁亥四月日命旌’이라 적고, 작은 글씨로 1887년(고종 24)에 명정을 받았음을 기록하였다. 효자 김한정 정려는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9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문중에서 보관하고 있는 교지를 통해 김한정의 증직과 명정 내력에 대한 전후관계를 파악할 수 있어 자료의 중요성을 보여 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