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13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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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說話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광 |
[정의]
세종 지역에서 무덤과 관련해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무덤설화’는 무덤이 성황당(城隍堂)으로 민속화하거나 명당 자리에 묘를 쓰면 나라와 자손이 번성한다고 믿는 풍수지리 사상과 관련하여 전해 오는 전설이다.
[세종 무덤설화의 특징]
세종특별자치시의 무덤설화는 역사 인물과 관련되는 「말봉산의 말무덤」, 「권봉장군과 말무덤」 등이 있다. 「용호리의 아기무덤」처럼 무덤이 성황당으로 민속화되는 경우도 있으며, 「학이 울고 날아간 명학리」처럼 풍수지리 사상을 배경으로 마을 이름이 된 경우도 있다. 「평안감사가 될 묘자리」, 「딸에게 빼앗긴 명당」 등을 통해 알 수 있듯 대부분 조상과 자손의 번영을 기원하는 일화가 담겨 있다.
이처럼 세종 지역의 주요 무덤설화는 ‘명당’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전통적인 민간신앙과 풍수지리 사상이 결합하여, 조상을 좋은 자리에 모시고 후손들도 함께 덕을 누리고자 하는 소망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서로 조상을 모실 명당을 찾게되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무덤과 관련한 명당전설이 생겨나게 되었다.
[세종의 주요 무덤설화]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용호리에 전해지는 「용호리 애기무덤」 설화는 무덤이 성황당으로 민속화되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연동면 내판리 부근의 「말봉산의 말무덤」 설화는 말봉산에 김유신 장군이 타던 말무덤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연동면 명학리의 「학이 울고 날아간 명학리」는 명학리 남쪽에 묘가 있었는데 묏자리를 파니 학이 울며 날아갔다고 한다. 학이 날아가면 그곳은 틀림없이 명당이라고 한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명학리(鳴鶴里)라고 한다.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노장리의 「권봉장군의 말무덤」은 임진왜란 당시 권봉 장군이 전사하자 권씨 가문에서 권봉 장군의 말을 위한 무덤도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설화이다.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신방리의 「이장하고 망한 변씨네」는 어느 고을에서 현감을 지낸 변익한에 대한 설화이다. 변익한은 하인과 머슴들을 학대하고, 흉년이 들어 마을 사람이 죽어 가도 창고에 가득한 쌀 한 톨 풀지 않았다. 그러다 변익한에게 학대를 당한 이의 후손인 나그네의 꼬드김에 넘어가 묘를 옮겼더니 자손이 귀해지고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다고 전한다.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 소정리의 「평안감사가 될 묘자리」는 어느 날 노름꾼이 장사(葬事)[죽은 사람을 땅에 묻거나 화장하는 일] 지내는 걸 보다가 그곳이 평안감사가 나올 명당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자기 조상의 유해를 묏자리에 묻어서 바꿔치기했다. 그 후 노름꾼은 정말로 평안감사가 되고 번창하였다. 반면에 원래 묏자리 주인은 거렁뱅이가 되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노름꾼은 사실을 실토하고 묏자리를 원상회복시켜서 함께 유복해졌다고 한다.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봉암리의 「딸에게 빼앗긴 명당」 설화 또한 명당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병자호란 뒤 윤 씨는 살아가기 위하여 어느 집 데릴사위로 들어갔다. 그러다 장인이 죽어 명당으로 모시려는데 아내가 묏자리에 물을 퍼부어서 자리를 옮기게 하였다. 그 후 윤 씨가 죽자 아내가 명당을 차지하였다. 이 묏자리는 지금도 봉암리에 있다고 한다.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장재리의 「창고터에 자리 잡은 홍씨네 묘」는 조선 시대 판서를 지낸 남양홍씨가 창고를 뜯어내고 묘를 써서 자손이 번창하였다는 설화다. 같은 금남면 장재리의 「개구리형 무덤」은 자손이 귀한 집에서 개구리가 번식을 잘하니까 묘에 개구리 혈(穴)을 썼다고 한다. 그런데 자손이 번창하지 않아 지관(地官)[풍수설에 따라 집터나 묏자리 따위의 좋고 나쁨을 가려내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개구리는 번식도 잘하지만 자기 새끼도 잡아먹는다고 하여 이장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