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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노동운동의 세포 조직인 광주공산당협의회에 참여한 운동가. 본적은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 524번지[남한산성로 791]이며 1913년 4월 26일에 출생하였다. 1930년경에는 인천 화평리에 거주하며 안경 및 전기 상점을 운영하였다. 광주공산당협의회 사건에 참여하면서 인천지역에서 인천지역 적색노동조합과 연계를 시도하는 광주공산당협의회 세포 조직원으로 활약하였다.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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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미상. 광주대단지 8.10 사태의 시위운동을 주도한 인물 성남의 8.10사태는 도시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소외된 도시 빈민층의 적극적인 생존 투쟁으로 전개되었다.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되었다는 불만과 함께 정부의 부당한 조처에 반대한 시위운동은 폭력적인 양상으로 치달았다. 1971년 8월 10일 시위대가 관용차를 불태우고 시영버스를 탈취하며 극단적인 상황으로 전개된 것은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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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상대원1동 제2공단에 있는 덕진양행의 노동조합 탄압에 맞서 분신 사망한 노동 운동가. 1980년대 말에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노동자들의 민주적인 노동조합 설립을 위한 투쟁이 전국적으로 일어났으며, 이러한 흐름에 따라 성남 지역에서도 공단의 사업장별로 노동조합 설립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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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 군인, 공무원, 사업가. 본적은 서울, 고향은 평양, 주소는 광주 중부면 탄리이다. 한국전쟁 기간 중 월남하여 군생활을 하였고, 32세 때인 1958년 육군 대령으로 예편하였다. 1961년에는 3개월간에 걸쳐 광주군수를 지냈다. 그 후 무적(無籍)으로 전전하다가 개발사업에 착수하여, 1971년 서울에서 모란개척단을 설립하고 대표이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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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노동운동의 세포 조직인 광주공산당협의회에 참여한 인물. 본적은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 268번지이며, 1902년 12월 7일에 출생하였다. 1936년에는 당시 시흥군 서이면 안양리 김원식(金元植)의 집에서 거주하면서 점원으로 활동하며 사회주의운동에 적극 가담하였다. 광주공산당협의회 사건에 연루되어 1936년 1월 분실된 문건이 일경의 수중에 들어가 체포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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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1989. 성남초등학교 신축 교사의 부지 등을 제공한 육영사업가. 박천복은 1901년에 출생하여 정식으로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면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사회 활동을 본격화하였다. 박천복이 성남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것은 사회적 환원을 실천적으로 보여 주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성남초등학교의 신축 교지를 기증하는 한편 사회 공적 시설인 성남출장소의 부지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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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 의병정신의 실천성에 기초하여 신간회 운동을 전개한 후 광주공산당협의회 사건을 주도한 운동가 성남지역에서 의병정신의 실천성을 시현하면서 행동한 지성인은 석혜환이라 할 수 있다. 석혜환은 1890년 10월 22일에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에서 지주의 아들로 출생하였고 1938년에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에 거주한 것으로 나타난다. 초창기 석혜환은 민족주의적인 성향을 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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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1975. 정치인. 건국 초 국회의장을 지낸 신익희의 큰아들로 광복군과 정치인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1915년 9월 경기도 광주에서 출생하여 1923년에 어머니와 함께 상해로 아버지 신익희를 찾아갔다. 1941년 중국 상해 광화대학(光華大學) 상과를 졸업하였다. 중일전쟁중인 1941년 중국국민정부감찰원 위임관을 비롯하여 국민정부군의 소교복무원(少校服務員), 중앙은행 과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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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노동운동의 세포 조직인 광주공산당협의회에 참여한 인물. 본적은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 924번지이다. 그는 1910년에 출생하였으며 일명 이양재(李良載)로도 불렸으며 1936년에는 시흥군 북면 본동리(本洞里)에 거주하고 있었다. 당시 27세의 나이로 점원으로 활동하면서 사회주의 운동에 적극적이었으며 광주공산당협의회 사건으로 일경에 붙잡혀 수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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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인물.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대중(大仲). 부친은 장성부사를 지낸 이시징(李蓍徵)으로 통정대부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조부 기상(箕相)은 문과에 급제한 후 병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역시 가선대부 이조참판 오위도총부부총관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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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경기도 광주군 돌마면의 면장을 지내며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한 인물. 일제강점기 돌마면 지역의 행정 책임자는 면장이었는데, 1935년부터 1939년까지는 이근학(李根學)[1896~1963]이 제4대 면장으로 재직하였다. 이어서 1940년부터 1941년까지는 면장의 이름이 ‘원산근학(圓山根鶴)’으로 되어 있다. 이는 이근학의 일본 이름으로 보인다. 이렇게 이근학은 돌마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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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기도 광주군 돌마면 지역사회에 기여한 인물. 이병철(李秉哲)[1881~1949]은 1920년 대홍수 때 관개사업으로 중촌보(中村洑)와 탄천보(炭川洑)를 건설하여 풍농에 기여함으로써 지역사회의 안정에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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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에서 1952년까지 돌마면사무소 면장을 역임한 인물 1906년에 돌마면은 여수동, 하탑리, 상탑리, 이매동, 분당리, 수내촌 등 15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강점기인 1929년 이매리에 돌마면사무소가 신축하였고 이갑규에 이어 1930년에는 이택규가 돌마면장에 임명되어 행정을 관장하였다. 1930년대 면장은 관제 자치기구를 육성하여 매판적 동맹자를 구축하는 한편 혁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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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미상. 조선시대의 인물 본관은 덕수. 군수를 지낸 이추(李抽)[1417~1463]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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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미상.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이매리에 신축한 돌마면사무소 면장을 역임한 인물 조선 후기 여지도서에 따르면 돌마면은 상동리와 하동리의 2개 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1846년에 돌마면의 경우 총호수가 460호이며 남자가 1,140명이고 여자가 1,224명으로 나타난다. 1906년에 돌마면은 여수동, 하탑리, 상탑리, 이매동, 분당리, 수내촌 등 15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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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지금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 지역에서 활동한 자선가. 이현규(李賢奎)는 가난한 사람들의 세금을 대납해 주고 채무를 장부에서 삭제해 주었다. 이에 지역 주민들이 1933년 9월 9일에 송덕비를 세워 주었다. 송덕비에는 소화(昭和) 연호가 새겨졌는데, 광복 이후 비문의 다른 부분은 온전하게 보존되었지만 연호 부분만 삭제하고자 한 흔적이 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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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 지역에서 활동한 정치가이자 교육가. 정동성(鄭東星)[1939~1999]은 경기도의 성남시·광주군·여주군·이천군 지역에서 10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이후로도 11대, 12대, 13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민주정의당 원내총무, 국회상공위원장과 체육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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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노동운동의 세포 조직인 광주공산당협의회를 조직, 결성한 인물. 일명 영린(永潾)으로도 호칭되었다. 정영배의 본적 및 거주지는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 138번지이고, 1912년 8월 29일에 출생하였다. 남한산노동공조회에 가입한 후 석혜환의 지도 아래 좌익서적을 읽고 사회주의에 심취하여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1930년 가을 남한산노동공조회가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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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1979. 군인. 국회의원. 1934년 경기도 이천에서 출생한 차지철은 1953년 사병으로 입대하여 갑종 소위로 임관하였으며, 미국 육군보병학교 고등군사반을 수료하고 국학대학교 정치학과와 한양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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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상대원1동에 있는 고려피혁의 노동조합 탄압에 맞서 분신 사망한 노동 운동가. 1987년 6월 항쟁 이후 노동자들의 민주적인 노동조합 설립을 위한 투쟁이 전국적으로 일어났으며, 이러한 흐름에 따라 성남 지역에서도 공단의 사업장별로 노동조합 설립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1988년 당시 200여 명의 노동자가 구두를 생산하고 있던 고려피혁에서도 노동조합 설립이 진행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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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미상. 독립운동가 한순회의 장남으로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월북한 인물. 한백건은 한순회의 장남으로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한순회가 일제시대 천도교에 전념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역정에 일정 부분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장남 한백건을 비롯한 네 형제들이 3.1운동과 신간회 광주지회의 지회장으로 활동한 부친의 감화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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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내무부에 근무하다 성남시청의 제3대 시장으로 취임한 인물. 홍석표는 1976년 7월에 내무부에 근무하다가 성남시청의 제3대 시장으로 취임하였다. 1977년 7월 19일에 강원도 기획관리실장으로 이임하여 성남시장으로 재직한 것은 1년 정도에 해당한다. 성남시에 재임하면서 문화 복지의 도시 건설을 시정 방침으로 정하여 업무를 추진하였다. 세부적인 추진 사업은 총력안보 강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