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0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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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石惠煥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서승갑 |
[정의]
1890~?. 의병정신의 실천성에 기초하여 신간회 운동을 전개한 후 광주공산당협의회 사건을 주도한 운동가
[생애]
성남지역에서 의병정신의 실천성을 시현하면서 행동한 지성인은 석혜환이라 할 수 있다. 석혜환은 1890년 10월 22일에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에서 지주의 아들로 출생하였고 1938년에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에 거주한 것으로 나타난다. 초창기 석혜환은 민족주의적인 성향을 갖고 온건 노선을 유지하였다. 광주신간회 활동에 참여한 석혜환은 한계성을 탈피하기 위해 사회주의운동으로 경사되었다. 1930년대에는 남한산노동공조회를 결성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고 신간회 광주지회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난다. 1935년 1월 광주공산당협의회를 결성하고 비서부 책임자로 활동하다 붙잡혀 1936년 4월 경성지법에서 3년형을 선고받고 대전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해방 후에는 남조선노동당에 가입하여 사회주의의 운동 노선을 견지하기도 하였다. 1950년 7월 조선인민군 점령 하에 경기도 광주군인민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으나 재임 중 보도연맹 가입 경력이 문제가 되어 지위 해제되었다.
[활동사항]
1927년 12월 광주지회 지회장으로 활동한 석혜환은 1929년 3월에 원산파업단에 격문을 발송한 혐의로 10일간 구류 처분을 받았다. 민족협동전선의 한계성을 인식한 그는 1930년 광주군 중부면에서 정영배(鄭永培), 김흥종(金興鍾) 등과 함께 항일비밀결사 조직인 남한산노동공조회를 조직하였다. 남한산노동공조회는 산성리에 근거를 두고 이 지역의 노동자와 농민을 대상으로 사회주의 선전을 주목적으로 하였다. 일제에 적발되어 추적을 받자 지하활동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조직을 전환하여 광주공동조합(廣州共同組合)으로 개편하였다. 1934년 12월, 석혜환 등이 주도하여 광주공산당협의회로 조직을 재편하는 동시에 노동야학 등을 통해 행동강령을 실행하였다. 궁극적으로 석혜환은 일정 부분 민족주의적 운동 노선을 유지하다가 사회주의 운동노선으로 방향 전환하여 치열한 삶을 영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