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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미상. 신라 중고기의 장군. ‘무력지(武力知)’·‘무력(茂力)’·‘무력(另力)’이라고도 표기되어 있다. 김무력은 김유신(金庾信)의 할아버지이고,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仇衡王)의 셋째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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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미상.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순중(純仲), 호는 상촌(桑村). 아버지는 통례문부사(通禮門副使) 지제고(知制誥)를 지낸 김오(金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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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성남 지역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의령(宜寧). 고려의 밀직부사를 지낸 남을번(南乙番)의 손자이며, 조선조 개국공신으로서 태종 대에 영의정을 지낸 의령부원군 남재(南在)의 장남이다. 부인은 고려의 판전교시사(判典校侍事)를 지낸 방순(方恂)의 딸이다. 아들들이 모두 관직에 올라 첫째 아들 남지(南智)는 좌의정을, 둘째 아들 남간(南簡)은 직제학을 각각 역임하였으며, 셋째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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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중고기 지금의 한강 유역 이남 경기도와 충청남도 일부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통치구역 명칭. 주치는 옛 경기도 광주 지역이었다. 백제, 신라, 고구려 삼국의 기초가 마련되고 삼국이 정립하는 형세로 된 이후, 삼국의 세력이 서로 접촉하는 지점인 오늘날 서울 일대는 이들의 쟁탈 대상이 되어 여러 차례 전쟁이 벌어졌다. 결국 신라의 진흥왕이 승리하여, 이곳에 신주(新州)를 설치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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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유역에 있었던 역사지명. 고구려의 수도 평양에 대비하여 남쪽에 있는 특별한 도읍이라는 의미이다. 고구려의 광개토왕은 정복사업을 크게 일으키고 백제를 침공함으로써 한강 유역을 둘러싸고 쟁패전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게 되었다. 고구려의 남하정책이 본격화된 것은 광개토왕 다음 왕인 장수왕 때였다. 장수왕은 그 427년(장수왕 15)에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기고 남하정책을 단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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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중대의 지방통치구역 명칭. 『삼국사기 권43 』 「김유신 열전」 하에, “문무대왕이 이미 영공(英公)[당나라 이적(李勣)]과 함께 평양을 격파한 다음 남한주(南漢州)로 돌아왔다”는 기록에 그 명칭이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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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시대의 정치연맹체. 서기전 1세기~서기 3세기경 한강 유역으로부터 경기도와 충청도, 전라도 지역에 분포되어 있던 여러 정치집단의 통칭이다. 54개 소국(小國)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큰 것은 1만여 가(家), 작은 것은 수천 가였다. 그리고 규모가 큰 나라의 지배자는 신지(臣智), 작은 것은 읍차(邑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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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유역에 있었던 마한의 소국. 후에 백제(百濟)로 성장, 발전하였다. 부여족의 이동과 분파과정에서 형성된 부여계 고구려 이주민인 온조(溫祚) 집단이 남하하여 한강 유역에 정착함으로써 이루어진 정치집단이다. 온조 집단은 처음에 위례성에 정착하여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십제(十濟)’라고 하였다가 중심지를 하남 위례성으로 옮기고 비류(沸流) 집단과 합친 뒤 국호를 ‘백제’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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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한강 유역에 설치되었던 신라의 지방통치구역 명칭. 고구려 세력의 남하로 백제는 한강 유역을 상실하였다. 백제는 이 지역을 되찾고자 신라와 동맹을 맺고, 드디어 이곳을 수복하였다. 그러나 당시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던 신라가 한반도의 중심부를 차지하려는 욕구와 서해를 통한 중국과의 교섭을 목적으로 553년(진흥왕 14) 7월 백제로부터 한강 유역을 빼앗았다. 그리고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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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경기도 광주 지역에 두었던 군부대 명칭. 신라는 553년(진흥왕 14) 한강 유역을 차지한 뒤 신주(新州)를 설치하고, 김무력(金武力)을 군주(軍主)로 삼아 군사조직으로 신주정을 두었다. 그리하여 고구려의 남하를 저지하는 동시에 고구려와 백제의 군사적 접근을 차단하면서 한반도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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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온조왕 46]. 백제의 건국시조. 엄밀한 의미에서는 위례성(慰禮城)에 토대를 둔 백제 왕실의 시조. 재위 서기전 18~서기 28. 현존 문헌들에는 백제의 시조로 전하는 인물들이 여러 명이며, 온조는 그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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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5[혜종 2]. 고려 전기의 재신(宰臣). 광주(廣州) 지방의 호족 출신이다. 그는 고려 태조 왕건(王建)을 받들어 대광(大匡)에 이르렀다. 두 딸은 태조의 제15비(妃) 광주원부인(廣州院夫人)과 광주원군(廣州院君)을 낳은 제16비 소광주원부인(小廣州院夫人)이 되어 왕실의 외척으로서, 광주의 강력한 지방세력을 기반으로 막강한 정치권력을 장악하였다. 그리하여 본래는 함규(咸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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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의 도성. 위례라는 명칭은 한성시대 백제의 도성이었던 위례성을 의미한다. 그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한강을 가리키는 아리수(阿利水), 욱리하(郁利河)의 ‘아리’, ‘욱리’에서 기원하였다는 설이 있는데, 여기서 ‘아리’, ‘욱리’는 모두 크다[大]는 뜻을 지니고 있는만큼, 대성(大城)의 뜻이다. 그리고 백제에서 왕을 가리키는 ‘어라하(於羅瑕)’의 ‘어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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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성남 지역 출신의 문신. 이강은 철원군 이우의 손자이고, 공민왕 때에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을 지낸 이암(李癌)의 아들이다. 아들 용헌 이원(李原)은 태조·태종·세종대의 문신으로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을 도와 1401년 좌명공신(佐命功臣) 4등으로 철성군(鐵城君)에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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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의 도성. 위례성은 한강을 기준으로 하북위례성(河北慰禮城)과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으로 나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부여계(夫餘系)인 비류(沸流)와 온조(溫祚)의 집단이 남쪽으로 내려와서 건국한 근거지가 위례성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건국한 지 13년만에 하남위례성으로 도읍을 옮겼다고 하므로 처음에 정착한 위례성의 위치는 하북, 즉 한강 북쪽에 있었을 것이다. 그 위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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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에 경기도 광주 지방에 배치하였던 지방군부대. 신라는 551년(진흥왕 12)에 백제와 연합하여 고구려가 점유하고 있던 한강유역을 공격하였는데, 백제군이 남북한성(南北漢城)의 6군(郡)을 수복하고, 신라군은 고현(高峴)[지금의 철령] 이남의 10군을 취하였으며, 553년에는 신라가 백제의 점령지까지 탈취하여 그곳에 신주(新州)를 설치하고 신주정(新州停)이라는 군단을 배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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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의 지방행정구역 명칭. 삼국통일 직후에 완성된 이른바 9주(州)의 하나로서, 지금의 황해도와 경기도 및 충청도 일부지역을 포함하는 범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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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의 지방행정구역 명칭. 757년(경덕왕 16)에 종전의 한산주(漢山州)를 개칭한 것이다. 삼국통일 직후에 완성된 이른바 9주(州)의 하나로서, 지금의 황해도와 경기도 및 충청도 일부지역을 포함하는 범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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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성남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성남시 수정구 사송동(현 시흥동) 출신이다. 자는 동로(東老). 사계(沙溪) 문인이자 김천역 찰방을 지낸 황면(黃沔)의 아들이고, 조부(祖父)는 예천군수를 역임한 황입중(黃立中)이다. 퇴계 문인으로 선조 13년 문과에 급제하여 평안병사를 지낸 황위(黃瑋)의 증손자이다. 도승지를 거쳐 좌찬성(左贊成; 종1품)에 올랐던 황일하(黃一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