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8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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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汝賢 |
영어음역 | Han Yeohyeon |
이칭/별칭 | 현재(賢哉)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해준 |
[정의]
조선 후기 『호산록(湖山錄)』을 집필한 서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청주. 자는 현재(賢哉). 증조할아버지는 한익(韓翼)이고, 할아버지는 한영희(韓永禧), 아버지는 한경춘(韓慶春)이다. 한영희의 진사 급제 사마방목에는 본관이 ‘면천’으로 되어 있다. 면천은 현재 당진의 남부 지역으로 각종 지리지의 면천 성씨 조에 한씨가 올라 있다. 청주 한씨의 서산 입향조는 고려 후기 서산 사지촌(蛇池村)에 은거하였던 전리 출신의 한정덕(韓正德)이다. 현재 서산의 청주 한씨는 한정덕의 아우인 한정수(韓正粹)의 자손들이다. 서산 청주 한씨의 가계는 한정수의 증손자인 한서정부터 한윤련(韓允璉), 한익, 한영희, 한경춘, 한여현(韓汝賢)으로 이어지며 서산의 명문으로 자리를 굳혔다.
[활동 사항]
한여현[1571~?]은 청주 한씨가 서산의 재지 사족으로 자리를 굳힌 16세기 후반에 출생하였다. 20대 초반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고, 30대에 생원시와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한여현의 행적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서산의 사찬 읍지인 『호산록』을 집필한 것이다.
『호산록』은 충청도에 남아 있는 사찬 읍지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1582년(선조 15) 서산군수로 부임한 고경명(高敬命)의 제안으로 집필을 시작하여 1619년(광해군 11)에 끝마쳤다. 『호산록』에는 한경춘과 한여현 부자가 지은이로 기록되어 있지만 나이로 보아 임진왜란 이전은 한경춘이 집필하고, 이후의 내용은 한여현이 썼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여현은 고경명과 깊은 친분을 유지하였다. 고경명은 1590년 상시관(上試官)[과거 시험의 시관 가운데 우두머리]으로 재직할 때 한여현의 시필(詩筆)을 과거장에 걸었고, 동래부사로 있을 때는 ‘벽해태사(碧海苔槎)’라는 글자를 써서 보내기도 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한여현은 고경명이 보낸 격문에 따라 서산의 사족들을 모아 원통사(元通寺)에서 결단식을 갖고 의병도청(義兵都廳)을 만들어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운반하였다. 임진왜란 중 서산군수로 부임한 박승종(朴承宗)의 폐정을 조정에 알리기 위한 상소문을 쓰기도 하였다. 1603년(선조 36) 식년시에 급제하고, 1616년(광해군 8) 증광별시(增廣別試)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벼슬이 전라도사를 거쳐 이조정랑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