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12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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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泗祠堂 |
이칭/별칭 | 충절사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가사리 산245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해준 |
건립 시기/일시 | 1679년 - 부조묘로 사당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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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0년 - 유사 사당 중수 |
현 소재지 | 유사 사당 -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가사리 산245 |
성격 | 사당 |
양식 |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2칸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가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사(柳泗)를 기리는 사당.
[개설]
유사[1595~1636]의 본관은 문화, 자는 성부(聖夫)이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관군을 이끌고 진영에 합류하여 경기도 광주 송파에서 적과 전투를 벌였다. 전투 중 병사들이 전사하는 것을 보고 분개하여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사군사(死君事)’ 즉 ‘죽음으로 임금을 섬긴다’라는 혈서 세 자를 남기고, 자신 또한 전투 중 순절하였다.
[위치]
서산시 부석면 가사리 가사초등학교에서 남쪽 50m 거리에 가사2리 마을로 들어가는 작은 도로가 있다. 도로에서 500m 정도를 가면 작은 교각이 나타나는데, 이 교각을 지나면 동무실로 향하는 샛길이 보인다. 유사 사당(柳泗祠堂)은 이 길목에서 우거진 대나무 숲에 둘러싸여 남향으로 위치한다.
유사 사당이 서산시 부석면 가사리의 현재 위치에 자리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병자호란으로 유사가 순절할 때 옆에서 함께 싸우던 병사가 간신히 유사의 시신을 말에 걸어 매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전투와 굶주림에 지친 말은 도착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죽어 버렸다. 후에 사람들은 말이 죽은 자리에 사당을 세우고 근처에 유사와 말 무덤을 만들어 기리게 되었다고 한다.
[변천]
유사의 병자호란 때의 공이 인정되어 1679년 부조묘로 사당을 건립하여 신주를 봉안하게 되었다. 사당은 본래 목조 건물로 지었으나 1970년 중수하면서 시멘트 벽돌로 건물을 만들고 담을 둘렀다.
[형태]
남향으로 자리 잡은 사당은 정면 2칸의 건물이다. 반구형 초석 위에 둥근기둥을 세우고 방풍관 시설이 된 맞배지붕을 올렸으며, 전면 툇마루가 있다. 현재는 시멘트 벽돌 건물이며 담장을 둘렀다.
[현황]
근대 개항기 말까지는 유사의 기일인 음력 12월 27일에 나라에서 제수용으로 검은 소 1마리씩을 내려 주었다고 한다. 현재 유사의 기일에 후손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약 60여 명의 추모 회원이 매년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고 업적을 기린다. 현재의 유사 사당은 충절사(忠節祠)라고 불리고 있다.
[의의와 평가]
유사 사당을 통하여 조선 후기 충신의 추숭(追崇)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