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0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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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樂安盆地 |
영어공식명칭 | Naganbunji Basin |
영어음역 | Naganbunji Basin |
영어공식명칭 | Naganbunji Basin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성민 |
전구간 | 낙안분지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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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지역 소재지 | 낙안분지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
성격 | 분지 |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있는 분지.
[명칭 유래]
‘낙안’ 지명 유래는 낙토민안(樂土民安) 관악민안(官樂民安)이라고 하여 땅이 기름지니 곡식이 많이 생산되어 먹을 것이 넉넉하니, 굶는 백성이 없어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백성들 역시 이처럼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이 잘살고 있으니 송사(訟事)가 있을 리 없고 더불어 관(官) 역시 정치를 잘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로 인하여 관과 백성이 더불어 즐겁고 편안했다 한다. 낙안은 본래 백제의 파지성(波知城)[分沙, 夫沙]이었는데, 나당연합군에 의해 함락된 이후 분차주(分嵯州)가 설치되었다. 신라로 통일된 후 757년(경덕왕 16) 분령군(分嶺郡)으로 고쳐 무주의 관할 하에 놓였다. 940년(태조 23) 낙안(樂安)[또는 陽岳]으로 고쳤고, 1018년(현종 9)에는 나주에 속하게 되며, 1172년(명종 2)에는 감무(監務)가 설치된 뒤 군으로 승격되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고려의 행정명을 그대로 따랐으며,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순천군(順天郡) 낙안면이 되었다가 1949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승주군에 속하다가 1995년 1월 1일 이후 전라남도 순천시에 속하게 되었다.
[자연환경]
낙안분지의 지도상 위치는 북위 34.7도, 동경 127.20도이며, 동쪽으로는 지리산과 서쪽으로는 무등산과 면해 있다. 낙안분지는 주변이 금전산과 백이산 등 고지(高地)로 둘러싸인 저평한 지형으로 기반 암석의 경연(硬軟) 또는 침식력 자체의 차이에 따라서 차별 침식(差別侵蝕)이 진행되어 발달했다. 남쪽으로는 남해 여자만(汝自灣)의 해풍을 받는 곳에 낙안들이 펼쳐지며, 해발 50m 분지형의 작은 평야다. 낙안분지는 동쪽에 제석산, 서쪽에 백이산(伯夷山)[584m], 북쪽에 금전산이 있고, 이 산지에서 발원한 낙안천과 교촌천이 흐르고, 이 하천들이 범람하여 낙안평야를 이룬다. 낙안평야는 주위가 산지로 둘러싸인 낙안분지 안에 발달하고 있는 평야이다. 낙안분지는 바람이 적고 일사량이 많은 날 산 중턱의 차가운 공기가 유입되어 기온 역전층(氣溫逆轉層)이 형성되어 안개가 발생하기 쉬우며 분지 내의 안개는 가을에서 초겨울에 이르는 기간에 잘 발생하며, 해가 뜨면 사라지는데 교통에 장애 요인이 되기도 한다.
[현황]
낙안분지는 조선시대 기록에 따르면 동쪽으로 화치(火峙)·대치(大峙)를 넘어 순천과 통행할 수 있는 길이 있었으며, 남쪽은 탄치(炭峙)를 넘어 고흥 흥양(興陽)으로, 북쪽으로는 분계치(分界峙)를 지나 화순 동복(同福) 지역으로, 서쪽으로는 태치(坮峙)를 넘어 보성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고갯길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낙안분지 남쪽으로는 갯벌이 발달한 벌교만이 있었고, 이쪽으로 바닷물이 들어와 배들이 드나드는 진석포(眞石浦)에는 선소(船所)가 있었으며, 부근에 해창(海倉)이 있었다.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 지역은 아름다운 자연 풍광으로 예부터 많은 시인 묵객들이 시를 짓고 노래하는 곳이었으며 특히 절경으로 알려진 곳들은 낙안팔경으로 정해 그 아름다움을 칭송했다고 전해온다. 낙안팔경으로는 금강모종, 백이청풍, 오봉명월, 보람조하, 옥산총죽, 원포귀범, 용추수석, 안동화류이다. 또한, 먹을거리도 풍부하여 낙안 팔진미로 꼽히는 음식이 있는데 금전산 석이, 백이산 고사리, 오봉산 도라지, 제석산 더덕, 남내리 미나리, 서내리 녹두묵, 성북리 무, 용소 천어 등이 전승되어 오고 있다. 낙안은 안개로 인한 수분이 공급되어 배와 오이의 주산지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