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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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5년 신라가 멸망하기 이전 시기의 경상북도 울진군의 역사. 울진 지역은 진한 소국의 하나인 우중국이 있다가 신라에 병합된 뒤, 한 때 고구려와 신라의 충돌지역이 되기도 했으나, 결국 신라의 영역으로서 국가제사인 소사가 설치된 중요한 곳이었다. 진한은 3세기 중엽경까지는 12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진 소국연맹체였으며, 진한 12국 가운데 하나인 우중국(優中國)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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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에 속하는 행정구역. 북면 지역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주인1리 석수마을의 동남쪽에 있는 ‘새두들’ 일대에서 구석기 유적 일부가 출토되고, 고목3리 감나무골과 나곡2리 골마, 신화1리 구장동과 새말, 부구1리 염촌마을에서 발견되는 지석묘와 덕천리 마분동에서 발견되는 삼국시대 고분군으로 미루어 청동기시대 이후부터 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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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상북도 울진군의 역사. 울진군은 경상북도 최동북단에 위치하는 군이다. 동쪽은 동해에 접하고, 서쪽은 봉화군과 영양군, 남쪽은 영덕군, 북쪽은 강원도 삼척시와 접한다. 경상북도 23개 시·군 중에서 8번째로 면적이 크다. 지금의 울진군은 조선시대까지만 하여도 북쪽의 울진 지역과 남쪽의 평해 지역으로 구분되어 서로 다른 행정 체계로 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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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있었던 삼한시대 진한의 소국 중 하나. 영남 지역에는 BC 2세기 말에서 BC 1세기 초 사이에 진한(辰韓)이 성립되었으며, 3세기 중엽 경까지는 12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진 소국 연맹체가 있었다. 진한 12국 가운데 ‘우중국(優中國)’ 또는 ‘우유국(優由國)’이라는 소국이 있었다. 울진 지역의 옛 지명은 창녕진흥왕척경비(昌寧眞興王拓境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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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에 있었던 고구려 시대의 지방통치구역. 울진 지역의 통일신라 이전의 지명이 우진야(于珍也)이다. 이는 『삼국사기』[1145]를 비롯하여 『고려사』[1451], 『세종실록지리지』[1432],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대동지지』[1864]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고려사』,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에는 고우이(古亏伊)라고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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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에 있는 삼국시대 울진 지역의 지명과 역사적 상황을 보여주는 비.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는 삼국시대 신라 진흥왕(眞興王)이 세운 기념비로, 북한산(北漢山)·황초령(黃草領)·마운령(摩雲嶺)에 있는 비와는 달리 비문 서두에 순수관경(巡狩管境)이라는 표현이 보이지 않아 그 성격을 규정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를 척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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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6년부터 935년까지 통일신라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상북도 울진군의 역사. 신라는 삼국통일을 이룩한 후 685년(신문왕 5)에 영토를 9주(州)로 분할하였다. 이때 동해안 일대를 명주(溟州)[지금의 강릉]로 편제하였으며, 울진을 명주에 소속시켰다. 울진이라는 명칭은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김유신 장군이 이곳에 와서 보배가 많아 울창할 ‘울(蔚)’자와 보배 ‘진(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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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덕신리 일대에 설치된 통일신라시대의 행정구역. 신라는 삼국통일을 이룩하고 685년(신문왕 5) 영토를 9주(州)로 분할하였다. 그 중 명주(溟州)는 북쪽으로 통천을, 서쪽으로 안동시 임하와 청송을, 남쪽으로 청하까지의 영역을 관할하고 있었으며, 울진과 평해 지역은 명주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후 통일신라시대 757년(경덕왕 16)에 전국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