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04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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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山內城址 |
영어의미역 | Sannaesung Fortress Site |
이칭/별칭 | 화성리 성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화성리 365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이희돈 |
성격 | 읍성 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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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건물 건립시기/일시 | 고려 전기 |
지정면적 | 63,000㎡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화성리 365 |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화성리에 있는 고려 전기 토축 읍성지.
[변천]
산내성에 관한 사료로는 『울진군지』 울진읍 성곽 산내성조에 있다. 죽변면에 있는 장산성(長山城)이 신라 말 왜구에 의해 폐허가 되자, 고려 초에 장산성에서 내륙으로 서쪽 5리 떨어진 산내성에 축성하여 이읍(移邑)하고 군민을 위무하여 이산(離散)되었던 민심을 결집하여 대읍을 이룩하였다. 성종 때 삭방도안렴사(朔方道按廉使) 장말익(張末翼)이 와서 국방상 만전을 기하기 위해 성지를 확대하고 성벽을 높게 올렸다가 그후 고현성(古縣城)으로 읍치를 옮겼다.
[위치]
죽변면 죽변항에서 서쪽으로 개설된 울진과 죽변을 연결하는 지방도 920호선을 따라 3.9㎞ 가면 화성1리 성안마을에 이른다. 성안마을에서 길을 따라 400여m 가면 길 옆에 화성초등학교가 있다. 이 화성초등학교를 감싸고 있는 야트막한 구릉성 분지가 산내성이다. 산내성 안의 성안마을에는 8가구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토성의 북쪽면이 지방도 920호선 도로 개설에 의해 일부 망실되었을 뿐 기타의 토성 흔적은 아주 잘 남아 있다. 남쪽으로는 넓은 들판과 울대골·성내골 등 작은 계곡이 2개 있고, 이 계곡들을 지나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다 다시 남쪽으로 관류하는 월곽천(月廓川)이 있다.
[형태]
성의 평면 형태는 북고남저(北高南低)의 지형을 이용하여 양 팔로 성안을 아늑하게 감싸고 있는 형태이다. 이러한 형태는 울진군 내의 다른 읍성에서 많이 나타나는 앞쪽이 열린 삼태기 형태이다. 성벽은 토석 혼축이나 흙을 더 많이 이용했으며, 군데군데 돌로 보축해 놓았다. 토성은 오랜 세월을 견뎌오면서 많이 유실되었으나, 토성의 상면 폭 230㎝, 성 안쪽 높이 200㎝, 성 바깥쪽 높이 80㎝ 정도의 흔적이 완연하게 남아 있다.
성안마을 시작되는 곳에서 70m까지의 구간은 토성의 흔적이 다소 양호한 편이다. 성의 기단부에는 치석한 정연한 석재가 남아 있다. 성돌은 크기가 34×28㎝ 정도 되는 방형으로 다듬어 놓아 성의 원래 형태를 볼 수 있다.
다음 구간의 약 30m는 원만한 곡선을 그리며 성체가 돌아가고 있는데, 상면은 다소 평탄하여 상층부가 많이 유실된 듯하다. 성의 상면 폭은 490㎝이며, 성 안쪽의 높이는 2~3m이고, 성 밖의 높이는 약 2m이다. 여기서 북쪽에는 타원형의 원만한 원호를 그리고 있는 성벽 구간이 있다. 동쪽으로는 화성초등학교가 있어 학교를 건축할 때 토성의 일부가 훼손된 듯하다.
성벽의 상면은 더욱 더 평평해져 토성의 상면 폭은 520㎝에 이르고, 화성초등학교쪽인 성 밖으로는 2단의 턱을 지어 단을 이루고 있다. 1단의 높이는 1m이고 외부 회곽도는 12m로서 매우 넓은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화성초등학교 담장을 만들기 위해 후대에 보축한 듯하다. 이 구간의 성벽 상면에는 석렬이 노출되어 있다. 총 길이는 약 100m이며, 꺾어지는 북동 모서리 일대에는 다수의 와편이 산재하고 있어 곡각부에 설치했던 망루와 관련된 건물지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북동쪽에서 꺾인 성벽 구간은 지방도 920호선과 나란히 서쪽을 향하고 있다. 이 구간의 총 길이는 173m, 성벽 상면 폭은 350㎝이며, 도로쪽인 성 밖의 높이는 2m 내외이고, 성 안쪽의 높이는 4.5m에 이른다. 이 구간은 그 끝지점에서 개설된 도로에 의해 성벽 일부가 잘려져 나가고 930㎝의 도로 폭을 넘어 산56번지[임]쪽으로 성벽의 연장선이 연결되어 있다. 도로 북편에 남아 있는 구간의 성벽 길이는 74m 정도이다.
다시 도로를 넘어 지나가는 구간의 성벽은 원만한 타원호를 그리며 서쪽을 휘어 감고 415번지[임]의 중앙부를 따라 남쪽으로 연결되어 내려오고 있다. 이 구간 성벽의 상면 폭은 290㎝이며, 성 밖의 높이는 1.5m, 성 안쪽 높이는 3m 내외이다. 길에 의해 잘려진 성벽의 시작점에서 성벽의 끝점까지 총 길이는 177m이며, 끝점에 가까워지면서 성벽은 경작에 의해 흔적이 사라져버린다.
남쪽으로는 경작과 농로 등으로 인해 성벽의 흔적이 없는 구간으로 길이는 132m에 이른다. 이곳이 성벽의 가장 낮은 곳이 되며, 성 내외로 출입할 수 있었던 문지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나 그 흔적은 아무 곳에서도 확인할 수 없다.
[현황]
성 안에는 3개의 우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1개만 남아 있다고 한다. 성의 길이는 도로에 의해 잘려나간 부분과 남쪽의 무성(無城) 구간까지 포함하여 약 1,000m[현존부 624m, 망실부 140m]이며, 성 안의 면적은 63,000㎡로 성은 매우 아늑하고 안정적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토성벽 일대에서 다수의 와편이 채집되었으나, 이 와편들은 시대를 가늠할 수 없는 무문의 평와편(平瓦片)들이 대부분이다. 이 성지는 사료상 고려 초에 축조되었다고 하나 고려 초와 관련된 유물은 성 안 전체가 경작지로 농사 중이어서 확인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