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04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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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蔚珍浦鎭 |
영어의미역 | Uljinpojin Garrison |
이칭/별칭 | 울진포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수산리 산212-2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희돈 |
성격 | 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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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연도 | 1512년 |
높이 | 3.4m |
둘레 | 234.3m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수산리 산212-2 |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수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수군 주둔지.
[개설]
울진포진은 본래 울진읍 현내동 고현포에 토성을 쌓아 설치하였는데, 1512년(중종 7)에 울진현에서 남쪽으로 11리 되는 근남면 수산리 수산역 동편 비래봉에 석축을 쌓아 이축하였다. 울진포진에는 수군만호 1명과 수군 400명을 주둔시켰는데, 수군만호는 종4품을 배치하였다가 1574년(선조 7)에 정3품의 첨절사를 두었다. 울진포영이나 고현포(古縣浦)라고도 하였으며, 동남(東南) 10리에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고현성(古縣城)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건립경위]
울진포진은 조선 전기 빈번한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동해안을 관측하는 ‘관망대’로서의 역할까지 염두에 두고 건립한 수군 주둔지이다.
[위치]
울진읍 내에서 남쪽으로 약 2㎞ 정도 지점에 울진읍과 근남면 경계 지점에 있다.
[형태]
울진포진의 규모는 둘레가 750척이고, 높이가 11척 정도였다. 산기슭에서부터 시작하여 능선을 따라 정상 가까이까지 이어지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남쪽 평지와 남서쪽에는 양 벽을 돌로 쌓는 석축법(㚒築法)을 사용하였고, 그 외의 부분에는 외벽만 석축으로 하고 안쪽은 흙으로 뒤채움하는 편축법이 사용되었다. 특히 북쪽은 절벽에 가까운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자연적 지형을 이용하여 곳곳에 흙과 돌을 함께 사용한 토석 혼축성이며, 남쪽의 평탄한 지형에서 서쪽의 경사를 따라 정상으로 쌓아올려 동쪽의 완만한 경사를 따라 내려오면서 성곽이 이어졌다.
성벽을 쌓은 부분에는 횡으로 장방형의 화강 석재를 맞추어 쌓고, 각기 지형에 맞추어 15° 정도 뒤로 물림쌓기를 한 직선형의 단경사 성벽이다. 비래봉 남쪽의 평지 지형에는 30㎝×100㎝ 정도의 비교적 큰 돌을 쌓았고, 그 외에는 30×40㎝, 30×70㎝ 정도의 비교적 작은 돌들로 조성되었다. 잔존하는 성벽이 비래봉 전체 둘레로 5~6개소가 남아 있다. 성석은 다른 곳에서 옮겨온 화강석재를 가공하여 이용하였으며, 외벽은 다듬은돌 바른층쌓기를 하였고, 성안에는 폭 1~2㎝의 길을 평탄하게 흙으로 구축한 성체(城體)가 있다.
성문은 포진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서 1~2개의 출입구를 남쪽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산 정상에는 길이 1.2×1.5m, 높이 0.3m 정도의 망로(望櫓)로 추정되는 곳이 1개소 있다. 특히 동해안을 관측하기 위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에 시멘트 블록으로 만든 군 초소 2개소가 자리 잡고 있다.
[현황]
구릉의 남쪽은 삭평되고 민묘가 들어서 있지만, 서쪽과 북쪽으로는 적석의 흔적이 계속 이어지고, 특히 서편의 끝단에는 장방형의 치석재를 3단 가량 쌓은 석축이 일부 드러나고 있다. 현재로는 오랜 풍상을 겪으면서 원형의 높이대로 남아 있지 않지만, 비래봉 주변을 완전히 둘러싼 석축이 남아 있다.
성의 상단 폭은 1~1.2m, 성의 높이는 비래봉 아래 평탄지에서는 2m 정도, 봉정상으로 올라가면서 0.3~1m 정도로 차차 낮아지고 있지만, 원형에 가깝게 존재하고 있다. 주변에는 몇 개월 전에 철거한 민가 세 채가 빈 채로 남아 있으며, 가옥 주위는 밭으로 사용되어 농작물이 재배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울진포진은 자연의 지형지세를 잘 이용하여 협축법과 편축법을 고루 사용하였고, 평저에는 석성을, 산의 경사면에서는 석축을 중심으로 한 토석 혼축성인 요새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