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0630 |
---|---|
한자 | 蔚珍靑年會 |
영어의미역 | Uljin Youth Associati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장희흥 |
성격 | 사회운동단체 |
---|---|
설립연도/일시 | 1919년 8월 |
해체연도/일시 | 1929년 |
설립자 | 장식|전영직|이우영|전영경|노기일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있었던 청년 단체.
[설립목적]
1919년 8월 일제의 문화정치의 허상을 알리고, 지역의 청년들이 봉건적 전통을 극복하고 근대성을 수용하게 하고, 억압받는 계층의 신분 해방을 위해 결성되었다.
[변천]
1919년 8월에 창립되었다. 1926년 1월 2일 혁신총회를 개최하여 회장제에서 집행위원 체제로 전환하였고, 임원진 개편과 새 강령 제정을 의결하였다. 또한 명실상부한 청년단체로 전환하기 위해 회원의 연령을 18세에서 25세까지로 제한하기로 결의하였다. 청년회의 변화와 더불어 울진무산자동맹이라는 사상 단체의 결성도 추진하였으나 일제의 방해와 탄압으로 실패하였다.
1929년 군 단일 청년 조직이 완성되었고, 8월에 울진청년회 및 신간회 울진지회의 주요 구성원이었던 이우정, 주맹석, 황택룡, 남왈성 등이 울진청년회를 울진청년동맹으로 정비하였다. 1929년 새로운 청년회를 결성하려다가 일제의 강한 탄압으로 좌절된 울진청년회 발기문 사건이 일어나 청년회의 활동도 사실상 중단되었다. 이후 청년회는 울진공작당 및 울진적색농민조합 결성으로 이어졌다.
[주요사업과 업무]
문화정치의 허상을 알리고, 사회주의 계열 청년 운동이라는 설립의 목적에 맞추어 회원들의 각성을 위한 『회우보(會友報)』 발간, 근대성 수용을 위한 연극 및 강연회, 신분 해방 운동인 형평 운동 등을 주요 사업으로 하였다.
[활동사항]
1920년 7월에 청년회관을 건립하고, 12월에는 회원들의 각성을 위해 『회우보』를 발간하였다. 지역의 청년들에게 봉건성 극복, 근대성 수용을 위해 연극을 공연하고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또한 1922년 울진강습소를 설치하고 운영하였는데, 1925년 울진 유일의 사립 보통학교인 제동학교(濟東學校)로 확대되었다. 백정들의 신분 해방운동인 형평 운동에도 관여하여 1924년 11월 형평사 울진지회가 결성될 때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의의와 평가]
1920년대 일제의 문화정치의 허상을 알리는데 기여하고, 울진 지역 청년들의 근대화와 신분 해방 운동에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