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305 |
---|---|
한자 | 靑銅器時代 |
영어공식명칭 | Bronze Ag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한수영 |
[정의]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서 청동기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던 시대.
[개설]
청동기시대는 본격적인 농경사회가 시작되는 시기로, 무문토기가 제작되고, 간석기가 더욱 발달하여 일상도구로 사용되며, 청동기가 제작되는 시기이다.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는 대략 기원전 1,500년경부터 시작하여 철기문화가 등장하기 전인 기원전 300년까지로 보고 있다. 이 시대는 청동기가 표지적인 유물이지만 남한 전역에서 청동기가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시기는 청동기시대 후기나 초기철기시대에 해당한다.
[완주의 청동기시대 집자리]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 집자리는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과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에서 확인되었는데,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구암리유적 10동·운교유적 13동·상운리유적 9동, 이서면 반교리유적 2동·신풍유적 5동·옥정유적 4동 등이 있다. 조사된 유적은 시기별로 차이를 보이는데, 전기에 해당하는 구암리유적은 경사가 심한 구릉 정상부에 입지해 있으며, 집자리의 평면형태는 장방형계가 주로 조성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소위 가락동식으로 알려진 이중구연단사선문토기가 가장 많고, 이외에 구순각목문토기와 공열문토기 등 청동기시대 전기를 대표하는 가락동식·역삼동식·흔암리식 토기가 공반되고 있다. 석기류는 피홈[血溝]이 있는 석검과 석촉·반달모양돌칼·어망추·숫돌 등이 출토되었다. 구암리유적에서는 집자리와 함께 구릉 최정상부에서 제의유구와 환호가 확인되어 주목된다. 구암리를 제외한 나머지 유적은 모두 완만한 구릉 정상의 평탄면이나 사면부에 입지하고 있으며, 평면은 원형이나 방형으로, 가운데 타원형 구덩이가 있고, 양쪽에 중심 기둥구멍이 있는 송국리형 집자리이다. 출토된 유물은 일상생활에서 주로 사용하는 발과 호형의 무문토기와 홍도·석부·석촉·석착·방추차·어망추 등이 있다.
[완주의 청동기시대 무덤]
전라북도 완주 지역의 청동기시대 무덤은 고인돌과 석관묘·옹관묘·석개토광묘 등이 있다. 고인돌은 지표조사를 통해 전라북도 완주 전역에서 35개 소가 확인되었으나, 발굴조사는 상운리유적이 유일하다. 상운리고인돌은 구릉 서사면에서 1기가 단독으로 위치하는데, 기반식으로 매장주체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외에도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상운리에서는 판석을 이용해 무덤을 조성한 석관묘 1기와 옹관묘 3기가 확인되었다. 옹관묘 가운데 2기는 옹형토기를 비스듬히 안치하였으며, 1기는 횡치(橫置)한 것으로 추정된다. 운교유적에서는 직치(直置)한 옹관묘 1기가 보고되었으며, 석개토광묘는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상운리와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반교리에서 확인되었는데,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반교리는 구릉 정상부에서 군집을 이루어 확인되었다.
[의의와 평가]
전라북도 완주 지역의 청동기시대 유적에서는 집자리와 무덤·제의유구 등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구암리유적은 전기 청동기문화를 대표하는 가락동식·역삼동식·흔암리식 유형이 모두 공반하고 있어 당시 중서부지역을 중심으로 한 문화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또한 청동기시대 전기의 제의와 취락 유적이라는 점에서 향후 청동기시대 문화상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청동기시대 중기에는 남한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송국리형 집자리가 완주 지역에도 조성되며, 무덤으로는 고인돌·석관묘·옹관묘·석개토광묘 등이 확인되고 있어 금강 유역 송국리문화의 범주에 포함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청동기시대 유적 가운데는 원형점토대토기 등 초기철기문화와 결합된 양상이 나타나고 있어 청동기문화에서 초기철기문화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