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9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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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參禮第一敎會 |
영어공식명칭 | Samrye First Church |
이칭/별칭 | 삼례제일장로교회,삼례교회,삼례서신리교회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만경하서길 18[삼례리 1291-1]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천식 |
설립 시기/일시 | 1904년 - 삼례교회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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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칭 시기/일시 | 1941년 - 삼례교회에서 삼례제일교회로 개칭 |
개칭 시기/일시 | 1944년 - 삼례제일교회와 상삼리교회가 합쳐져 일본기독교장로회단 삼례교회로 개칭 |
개칭 시기/일시 | 1945년 - 삼례제일교회 개칭 |
현 소재지 | 삼례제일교회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만경하서길 18[삼례리 1291-1] |
성격 | 교회 |
전화 | 063-291-2266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삼례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
[설립 목적]
삼례제일교회는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 지역민들에게 기독교의 교리 전파, 민족 교육 실시, 독립 운동 장려 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삼례제일교회는 1904년 초 선교사 마로덕(馬路德)[L.O. McCutchen, 1875~1960]이 최대진 조사와 함께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에 전도한 결과 세워졌다. 삼례제일교회는 마로덕 선교사와 최대진 조사는 장경태, 김헌식, 정찬신, 김계홍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고 장경태의 개인집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시작되었다. 신도수가 증가됨에 전라북도 전주군 창덕면 상후리[현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삼례리]에 있는 초가 네 칸을 예배당으로 사용했다. 당시 평균 교인수가 장년 17명이며 관리목사는 마로덕이었다. 1907년에는 교인수가 100명으로 증가되었다.
러일전쟁 이후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장경태는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영흥학교[훗날 영신학교로 개칭, 현 삼례중앙초등학교]를 설립하였다. 1911년에 김계홍이 초대 장로로 장립되면서 조직교회가 되었다. 1918년 김인전 목사가 잠시 당회장을 맡았으나, 1919년 전주 지역 3·1만세운동을 주도해 일제 당국으로부터 탄압을 받았다. 결국 김인전 목사는 중국으로 망명해 상하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한국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이에 설립자인 마로덕 선교사가 1919년에 다시 당회장을 맡았다. 이후로 김성식 목사[1928~1929], 최양섭 목사[1930~1934], 윤식명 목사[1939~1942] 등이 일제강점기 일본의 탄압으로 고초를 겪었지만 삼례교회를 지켰다. 1941년 5월에 삼례교회[또는 삼례서신리교회]에서 삼례제일교회로 개칭되었다. 1942년 이일문 목사가 당회장일 때 일제 당국에 교회종을 탈취(奪取) 당했다. 1944년 1월 2일부터 삼례제일교회와 상삼리교회가 합쳐져 교회 명칭이 일본기독교장로회단 삼례교회로 변경되었다.
해방 이후 전주노회가 삼례제일교회로 개칭하였고, 정기환 목사[1946~1948], 김성배 목사[1948~1952]가 시무하였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삼례제일교회는 북한 공산당 선전실로 이용되었다. 6·25전쟁 이후로는 박계영 목사, 이장봉 목사, 임동혁 목사[1963~1967]가 시무하였다. 2003년에는 삼례제일교회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였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삼례제일교회는 영흥학교를 세워 1967년 완주교육청으로 이관할 때 까지 60년 동안 가난하여 학교를 다니기 어려운 1,100명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켜 교회와 민족의 지도자로 길러냈다. 2004년에는 헌금 삼백만원으로 4곳 선교기관[방파·전라·베트남·러시아]에 후원하고 있다. 2016년부터는 미얀마 2곳, 필리핀 1곳 총 3곳에 유치원을 설립해 제3세계 어린이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인도 캘커타와 북한 선교를 위해 협력선교사를 지원하고 있다. 또한 우석대 기독동아리연합 및 우석대·한일장신대·호남신학대에 장학금 지급 등 학원선교를 하고 있다. 그리고 농어촌에 있는 미 자립 교회 4곳에 연간 이천만원의 선교후원금을 보내고 있다.
이와 같은 선교 사업은 선교 방침에 토대를 두고 실행하고 있다. 삼례제일교회의 선교 방침은 첫째, 교단·지역·인종 초월, 둘째, 선교사의 선택이 선교의 승패 결정[선교사와 신뢰관계. 믿고 맡겨야], 셋째, 현지의 사정과 형편에 초점[준비할 때 소통], 넷째, 담임목사의 비전과 목회철학을 중심으로 깨어있는 평신도 지도자가 연합, 다섯째, 겸손한 선교-물질적·인종적·영적 우월감, 현지 선교사의 지시와 인도를 받아야, 여섯째, 물질 후원뿐만 아니라 기도 후원, 마지막으로,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는 미얀마선교[미얀마 유학생 출신들과 유대관계 지속]이다.
[삼례교회 출신 독립운동가]
삼례제일교회 초창기 교인이면서 영흥학교를 설립한 장경태 영수, 김헌식 영수, 김계홍 등의 후손들이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김헌식 영수의 둘째 아들 김춘배는 중국 상하이에서 독립군 활동을 한 공적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 받았다. 신흥무관학교 제1회 졸업생인 김창국 목사, 독립만세운동을 전주에서 주도하다가 상하이로 망명하여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하던 김인전 목사, 기전학교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고 후일 국회의원과 상공부장관을 역임하였고 중앙대학교를 세운 임영신 등이 삼례제일교회 출신이다.
[현황]
삼례제일교회는 2018년 현재 시무 장로7명, 은퇴 장로 3명, 협동 장로 2명, 안수 집사 10명, 시무 권사 23명, 은퇴 명예 권사 23명, 서리 집사 111명, 명예 집사 42명, 청소년부 40명, 아동부 30명, 유치부15명, 영유아 7명 등을 포함해 총 교인수가 300여 명이다.
[의의와 평가]
삼례제일교회는 전라북도에서 100년 이상 역사를 가진 교회로, 전라북도 완주군의 기독교 확산과 성장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사료적 가치가 높은 교회이다.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군뿐 아니라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큰 공헌을 끼친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교회로, 일제강점기 기독교 계열이 한국의 독립운동에 미친 영향을 파악할 수 있는 대표적 교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