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3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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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Korean Red Pine |
분야 | 지리/동식물 |
유형 | 식물/보호수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홍승균 |
최초 식재 시기/일시 | 1509년경 - 소나무[송악면 강장리 소나무, 수령 51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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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식재 시기/일시 | 1539년경 - 소나무[송악면 유곡리 소나무 2본, 수령 480년] |
최초 식재 시기/일시 | 1609년경 - 소나무[인주면 해암리 소나무 2본, 수령 410년] |
최초 식재 시기/일시 | 1719년경 - 소나무[영인면 신봉리 소나무, 수령 300년] |
소재지 | 형제송 -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해암리 산45[대윤사 뒷길] |
소재지 | 강장리 소나무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강장리 산 26[오형제고개] |
소재지 | 유곡리 묘지송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유곡리 산 62[이사종 묘] |
소재지 | 신봉리 소나무 -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신봉리 242 |
소재지 | 현충사 반송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현충사[경내 중앙] |
학명 | Pinus densiflora |
생물학적 분류 | 식물계〉겉씨식물문〉구과식물목〉소나뭇과 |
[정의]
소나뭇과로 충청남도 아산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한 상록침엽교목.
[형태]
소나무는 한반도 전역에 골고루 분포하지만, 지역에 따라 몇몇 변종 및 품종이 다양하게 자라고 있다. 잎은 바늘 모양을 하고 있는데, 두 개가 한 묶음으로 자란다. 나무껍질은 노목일수록 두껍게 형성되어 갈라지는데, 위쪽은 적갈색을 띠며 아래쪽은 흑갈색으로 성장한다. 높고 곧게 자라는 성향을 띠지만, 부챗살처럼 가지가 펼쳐지는 반송이나 아래로 처지는 가지의 변종도 있으며, 곰솔처럼 짙은 색채를 띠는 등의 형태로 분포하고 있다.
[역사/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소나무는 대표적인 장수 수종으로 예로부터 십장생(十長生)의 하나로 꼽혔으며, 다른 나무가 자라기 힘든 메마른 곳이나 척박한 곳에서도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잘 자라는 특성이 있다. 소나무는 우리 생활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목재로서뿐만 아니라 뿌리, 새순, 나무껍질, 솔잎과 송진에 이르기까지 약재로 활용되고 식용까지 쓰임새가 매우 다양하였다. 궁궐과 사찰 등의 건축재로 선호하였던 소나무는 조선시대에 왕실 차원에서 특별 관리되었으며, 송충이를 방제하는 시기에는 임금이 직접 참여하는 사례가 있던 만큼 귀하게 여겨 정성을 기울였다. 『조선왕조실록』에 소나무에 대한 기록이 700차례 이상 등장할 정도로 소나무의 융성은 곧 국가의 부강에 비유되었다. 장수목인 소나무는 마을에서 신령스럽게 여겨 제사를 치르기도 하였고, 특히 조상을 모시는 묘역에 심어 사시사철 푸르름으로 조상을 보필하는 기능을 부여하였다.
[현황]
충청남도 아산시에는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 중에서 아홉 그루의 보호수가 지정되어 중점 관리되고 있는데, 목재나 땔감으로 효용이 높았던 소나무가 오래도록 생존한 점에서 매우 귀하다.
1. 인주면 해암리 소나무 2본
일명 ‘형제송’이라고 불리는 해송 두 그루가 있다. 임진왜란 때 형제 장수들이 아산만에 쳐들어온 왜군과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한 데서 유래한 나무인데, 410년의 수령에 두 그루가 산머리에서 마주 보고 있다. 해송은 곰솔, 흑송이라고도 불리는데 주로 바닷가에서 자란다. 바닷가에서 멀지 않은 해암리의 형제송은 나무껍질이 거무튀튀하여 햇빛을 많이 쬔 해송의 특질을 담고 있다. 해송은 소나무와 서로의 영역을 침해하지 않는 성향이 있어서, 형제송 주위는 형제의 넋을 지닌 두 그루만 우애 좋게 자리하고 있다.
2. 송악면 강장리 소나무
송악면 오형제고개의 언덕에 있는 소나무는 수령이 510년에 이르는데, 신작로가 개통되기 전까지도 고개언덕의 서낭당과 함께 긴 세월을 보냈다. 소나무는 스스로 화학물질을 내보내어 자신의 밑에 다른 나무가 자라지 못하도록 영역을 지키는데, 강장리 소나무는 비록 지지대에 의존할 만큼 구부러진 모습이지만, 비바람을 맞으며 산머리를 독차지하고 있다. 소나무는 자유분방하고 틀에 얽매이지 않는 모습으로 사랑을 받는 수종이지만, 거친 자연환경에 적응하고 생존한 결과로 이루어진 뒤틀림이어서 510년의 세월이 숭고하다.
3. 송악면 유곡리 소나무 2본
송악면의 예안이씨 입향조 이사종(李嗣宗)과 그의 아들 이단(李耑)의 묘역에 자리한 묘지송이다. 이사종의 묘 앞에 있는 소나무는 480년의 수령으로 지지대에 의존하도록 기울어졌지만, 아름다운 나무껍질에서 품격이 묻어나고, 아들 이단의 묘역에는 반송이 심어져서 활짝 피어오른 모습이다. 소나무는 엄숙함과 고결함 그리고 변치 않는 기상을 의미하므로 예로부터 묘역에 많이 심었다. 망자를 묻은 자리에 늘 푸르고 오래도록 강인한 소나무를 가꿈으로써 후손들의 정성 어린 존경을 표현한 나무라서 외부의 나쁜 손길을 이겨냈다.
4. 영인면 신봉리 소나무
신봉리의 소나무는 300년의 수령인데, 오랜 세월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함께 하였다. 마을에서는 집안에 우환이 생기면 색색의 헝겊으로 나무에 매달고 제사를 지냈으며, 가족 중에서 아픈 이가 생겼을 때 나무껍질을 벗겨 삶은 물을 마시면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마을에서는 보은의 마음으로 막걸리를 부어주며 극진하게 위했다고 한다. 오래된 소나무에 막걸리를 주는 의식은 여러 고장의 유서 깊은 소나무에서 그 사례를 찾을 수 있는데, 소나무의 뿌리에 생긴 상처에 실제로 효험이 있다는 것으로 밝혀져서 단순히 사람이 마시는 술을 나무에 주는 의미를 넘어 과학적인 지혜가 엿보인다. 사람에게는 나무껍질을 제공하고 마을 사람들은 막걸리를 주면서 건강을 기원하는 인간과 나무의 상부상조 모습에서 이 나무는 곧 마을의 구성원과 다름없다.
5. 염치읍 백암리 소나무
현충사의 경내에서 사당과 활터를 갈라서는 사거리에 반송의 위용이 장엄하다. 현충사는 1967년에 당시 정부로부터 대대적인 성역화 사업이 추진되었다. 비약적으로 확장된 경내에는 당시로서는 최고의 조경 기법을 동원하여 명품 반열의 나무들을 심었는데, 이 나무는 인근의 염티초등학교 교정에서 옮겨 심은 나무이다. 염티초등학교의 제1회 졸업생들이 기념 식수했던 반송인데, 관계 당국의 조치에 눈물을 흘리면서 안타까워했던 기록이 전한다. 그러나 지금은 현충사의 랜드마크로서 활터의 은행나무에 버금가는 찬사를 받는 전 국민의 나무가 되었다고 자평하면서 졸업생들의 큰 자부심이 된 사례이다. 현충사의 드넓은 부지에서 극진한 관리를 받으며 내리뻗은 반송의 기운찬 가지들은 충무공 이순신의 기개를 빼닮았으며, 아산이 자랑하는 또 하나의 소중한 자산이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