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453 |
---|---|
한자 | 長在里-遺跡 |
영어공식명칭 | Remains in Jangjae-ri Anganggol |
이칭/별칭 | 아산 장재리 안강골유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장재리 안강골 |
시대 | 선사/석기,선사/청동기 |
집필자 | 나건주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5년 10월 20일~2006년 7월 26일 - 충청문화재연구원 장재리 안강골유적[Ⅰ] 발굴 조사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6년 3월 2일~2006년 7월 9일 - 충청문화재연구원 장재리 안강골유적[Ⅱ] 발굴 조사 |
원소재지 | 장재리 안강골유적 -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장재리 안강골 |
성격 | 복합 유적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장재리에 있는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복합 유적.
[위치]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희망로 100[장재리 305]에 경부고속철도 천안아산역[온양온천]이 있다. 천안아산역[온양온천] 서쪽에 있는 지산체육공원의 동쪽으로 연접하는 나대지(裸垈地)[지상에 건축물이나 구축물이 없는 대지]가 장재리 안강골유적이 조사된 자리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장재리 안강골유적[Ⅰ]의 발굴 조사는 대한주택공사[현 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시행한 아산신도시 아산배방 택지개발사업에 따른 구제(救濟) 조사[대규모 공사나 개발에 앞서 매장문화재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조사]로 진행되었다. 지표조사에서 발굴 조사까지 충청문화재연구원에서 실시하였다. 1단계 사업부지 107만 평[약 3.5㎢]에 대한 지표조사는 2003년 실시되었는데, 15개 지점에 대해서 시굴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개진되었다. 시굴 조사는 2004년 12월 29일부터 2005년 4월 17일까지 실시하였으며, 5개 지점에서 선사 시대~조선시대에 이르는 유적이 확인되어 발굴 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장재리 안강골유적은 시굴 조사 당시 9지점에 해당하며, 발굴 조사는 2005년 10월 20일부터 2006년 7월 26일까지의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장재리 안강골유적[Ⅱ]은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시행한 장항선 천안~온양온천 간 복선전철 노반 개량공사에 따른 구제 조사로 확인되었다. 해당 공사지역에 대한 지표조사는 1998년 충청매장문화재연구원[지금의 충청문화재연구원]에서 진행하였으며, 건물지·주거지 등 생활 유적의 존재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시굴 조사는 2004년 충청문화재연구원에서 실시하였으며 전체 조사면적 6,362㎡ 중에서 유구가 확인된 2,750㎡의 범위에 대해 발굴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개진되었다. 발굴 조사는 충청문화재연구원에서 2006년 3월 2일부터 2006년 7월 9일까지의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장재리 안강골유적[Ⅰ]과 장재리 안강골유적[Ⅱ]는 개발사업 주체의 차이로 인해 조사구역이 분리되어 있으나, 같은 구릉에 위치한 동일한 유적에 해당한다. 택지개발사업과 노반 개량공사가 같은 시기에 시행되면서 발굴 조사가 함께 진행될 수 있었다. 발굴 조사 결과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마을이 조사되었으며, 이 외에도 통일신라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생활 유적과 무덤 유적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
장재리 안강골유적의 신석기시대 마을을 구성하는 주거지에서 다수의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되었다. 단치구(單齒具)로 그은 세로생선뼈무늬[횡주어골문(縱走魚骨文)]가 주로 시문되어 있었는데, 이 외에도 마름모찍은무늬[능격문(菱格文)], 짧은가로줄무늬[횡단선문(橫短線文)] 등 다양한 문양이 확인되었다. 석기류는 식량 채집구인 뒤지개[굴지구(掘地具)]와 함께 채집된 식량을 가공하는 데에 사용된 갈판과 갈돌 등이 다수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에서도 다수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겹아가리짧은빗금무늬[이중구연단사선문(二重口緣短斜線文)]에 구멍무늬[공렬문(孔列文)]가 결합된 소위 ‘흔암리(欣岩里)식’이라 불리는 민무늬토기가 출토된 점이 특징적이다. 이 외에 다양한 형태의 돌화살촉과 당시의 생활상을 알려 주는 가락바퀴[방추차(紡錘車)], 반달돌칼[반월형 석도(半月形石刀], 벌채용 돌도끼[석부(石斧)] 등 다수의 석기류도 출토되었다.
[현황]
장재리 안강골유적이 있는 곳은 아산배방 택지개발 1단계 사업지구이며, 택지개발이 완료된 후 현재는 나대지로 방치되어 있다. 조사 내용은 충청문화재연구원의 발굴 조사 보고서에 기록·보존되었다.
[의의와 평가]
장재리 안강골유적은 신석기시대 마을에서 조선시대 분묘군(墳墓群)까지 다양한 성격의 유구가 확인된 복합 유적이다. 6기의 주거지로 구성된 기원전 3,000년을 전후한 시기의 신석기시대 마을과 14기의 주거지로 구성된 청동기시대 마을이 함께 조사되었다. 신석기시대 마을은 풍기동유적, 성내리유적과 거의 동시대의 유적으로 신석기시대 당시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생활상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청동기시대 마을은 아산 지역에서 확인된 가장 이른 단계의 청동기시대 주거지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당시 사람들은 동북한과 서북한 지역, 멀리는 중국의 요동반도(遼東半島)에서 이주해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