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지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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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에 본관을 둔 성씨. 시조는 곽경(郭鏡)으로 송나라 관서 홍농(弘農) 지방의 명문가 후예였다. 1133년(고려 인종 11)에 고려에 건너와 정착하였다. 1138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평장사, 문하시중 등의 관직을 거쳤고, 이후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의 작위와 함께 포산군(苞山君)에 책봉되었다. 강릉 입향시조는 곽경의 13세손인 곽거완(郭居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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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에 본관을 둔 성씨. 김주원이 787년에 당시 북빈경(北濱京)이었던 강릉으로 옮겨 명주 지역 9군(郡) 25현(縣)을 관장하는 명주군왕에 책봉된 이래 후손들이 누대에 걸쳐 세습하면서 형성되었다. 김주원은 김알지(金閼智)의 21세손이며,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6세손이다. 785년 선덕왕이 죽고 후사가 없자 신하들은 무열왕계의 직계인 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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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와 사천면 사기막리에 걸쳐 있는 고대 산성. 백제의 시조 온조왕(溫祚王)이 도읍지로 정하고 군사를 훈련시키기 위하여 축조하였다는 전설과 발해의 대씨(大氏)가 쌓았다 하여 대공산성(大公山城)이라 불리운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가까운 곳에 보현사가 있어 보현산성(普賢山城)으로도 불린다. 전설로 전해 오는 백제의 온조왕이나 발해의 대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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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왕 박혁거세(朴爀居世)의 후손인 박순(朴純)이 1200년대에 강릉에 정착한 이후 누대에 걸쳐 세거한 박씨. 박씨는 신라 건국시조 박혁거세를 시조로 하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40여 개의 본을 사용한다고 한다. 이중 박혁거세의 4세손 파사왕의 후손인 박순이 1200년대 강릉으로 이주한 이후 그 후손들이 대대를 이어 강릉 지역에 살면서 대성(大姓)을 이루었으며, 『세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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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위치한 조선시대 분청사기 도요지. 강릉시내에서 구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약 10㎞가면 우측으로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을 안내하는 안내판이 있다. 그 포장길을 따라가면 삼왕동 명주군왕릉 입구에 도착하게 된다. 여기에서 북쪽의 좌측 소로를 따라 약 1㎞쯤 가면 베리안 마을이다. 이 마을의 산기슭에서 아래쪽 계곡에 닿는 경작지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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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내동·명주동·용강동 일대에 있는 조선 시대 강릉부의 행정성(行政城). 읍성(邑城)은 지방 행정의 중심지인 치소지(治所地)에 축조한 성곽으로 조선 전기에는 대략 120여 곳이 유지되었다. 상비군에 의한 충분한 조치가 어려웠던 당시 불시에 발생하는 외침으로부터 주민의 생명은 물론, 지방 관아의 각종 행정 자료와 물품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읍성이 필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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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읍성은 근대 이전 고려와 조선시대에 강릉 지역의 치소(治所)가 위치했던 행정중심지에 조성되었던 성곽을 말하며, 관아 유적은 강릉읍성 내에 존재했던 치민을 위한 시설물을 일컫는다. -읍성을 보면 역사가 보인다. - 강릉읍성과 관아 유적 강릉은 지리적으로 한반도 중부의 동해안에 위치하며, 서·남·북으로 고도 약300~1,000m의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서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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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강원도의 이름. 995년(성종 14)에 지방행정구역을 10도로 나눌 때 함경도와 합하여 삭방도(朔方道)라 하였다가 1178년(명종 8)에 삭방도를 폐지하고, 함경도와 강릉 일대의 해안지방을 연해명주도(沿海溟州道), 춘천·철원 일대의 영서 지방을 동주도(東州道)라고 개칭하였다. 1263년(원종 4)에 연해명주도는 강릉도(江陵道)로, 동주도는 교주도(交州道)로 고쳤고,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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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기나 청자, 백자, 분청사기를 구워내던 가마의 터. 도요지는 청자(靑瓷), 백자(白瓷), 분청사기(粉靑沙器) 등을 제작하는 가마의 터를 말하며, 예로부터 제작되는 목적과 소성 효과(燒成效果)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가마가 제작되어 왔다. 가마는 경사도에 따라 평가마(平窯)와 오름가마(登窯)가 있고, 다시 오름가마는 아궁이 이외의 전체가 터널 모양으로 된 지하식(地下式)과 반지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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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연곡면 방내리에 있는 고대의 토성. 보통 방내리성(坊內里城)으로 불리는 토성으로 고허성(稿虛城), 교허성(校虛城)이라고도 불린다. 이 성은 고현성(古縣城)의 성격을 갖는 성곽이며 또한 인근에 서원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후에 교허성(校虛城)으로 불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고허성(稿虛城)’이라기 보다는 ‘교허성(校虛城)’으로 불리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성(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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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일(梵日)은 사굴산문(闍堀山門)의 본산인 굴산사(屈山寺)를 창건한 신라시대 선승(禪僧), 굴산사지(屈山寺址)는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 있었던 굴산사(崛山寺)의 옛 절터.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는 굴산사지가 있다. 창건연대와 연혁을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으나, 범일이 입당구법(入唐求法)한 후 귀국하여 851년(문성왕 13) 명주도독 김공(金公)의 청을 받아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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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에 있는 법정리. 동쪽으로는 관음리와 위촌리 및 사천면 사기막리, 서쪽으로는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와 사천면 사기막리, 남쪽으로는 어흘리, 북쪽으로는 사천면 사기막리에 접해 있다. 신라 때에 낭원 대사가 세운 보현사(普賢寺)의 ‘보’ 자를 따고 마을이 빛을 내는 곳이란 뜻에서 ‘보광’이란 마을 이름이 생겼다. 보광리(普光里)는 본래 강릉군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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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지역에서 봉(熢)과 수(燧)로 변경의 급한 보고를 중앙에 전했던 고대의 통신 방법. 봉수는 군사적인 목적을 띤 통신망이고, 행정 기능 중심인 역제와는 달리 양반 관료들에게 사적으로 이용되지 못하고 변경 지방이나 국경 지방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중앙에 연락하는 통신 방식으로서 그 특수성과 한계성을 지니고 있었다. 중국의 통신 및 교통 제도 가운데 남송의 파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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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이 있었던 터나 현재 전해지는 불교 관련 물건. 강릉 지역의 불교 유적 가운데 지금까지 알려지고, 조사된 폐사지로는, 향호리사지(香湖里寺址)[주문진읍 향호2리 816], 삼교리사지(三橋里寺址)[신사동사지(新寺洞寺址), 주문진읍 삼교리 572], 삼산리사지(三山里寺址)[청학암(靑鶴菴), 연곡면 외동길 111[삼산2리 259]], 장덕리사지(長德里寺址)[원당사지(元堂寺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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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가 불상을 모시고 불도(佛道)를 닦으며 교법을 펴는 곳. 1. 문헌 수록 사찰 강릉시 소재 사찰로서 문헌에 수록된 사찰로는 굴산사(掘山寺), 보현사(普賢寺), 문수사(文殊寺), 신복사(神福寺), 등명사(燈明寺)[현 등명낙가사], 안국사(安國寺)[안곡사], 산계암(山溪菴), 염양사(艶陽寺), 청학사(靑鶴寺), 용연사(龍淵寺), 칠성암(七星菴)[현 법왕사(法王寺)],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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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판교리 사화산에 위치한 봉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남쪽으로 소동산(所同山)에 응하고 북쪽으로 주문산에 응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상에는 백두대간의 곤신봉에서 갈라진 동으로 벋은 지맥이 지금의 성산면 보현산[일명 대궁산][1,000m]을 거쳐 동쪽으로 낮아지면서 해안가에서 낮은 잔구 형태로 끝나는 봉우리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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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에 거주하는 성씨. 성(姓)은 혈족관계를 나타내기 위하여 제정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성을 널리 쓰게 된 것은 고려 중엽부터이다. 성에는 관(貫)이 있는데, 적(籍)·본(本)·본관(本貫)·관향(貫鄕)이라고도 한다. 강릉에 거주 해 온 성씨와 관련해서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성씨조(姓氏條)」를 통해 그 초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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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로(驛路)에 세워 통신, 숙박, 교통 기능을 담당하던 곳. 역은 역관(驛館),역참(驛站),우역(郵驛)등 다양하게 불리며 중국의 역전제도(驛傳制度)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역원제도가 실시된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이다. 조선시대 역의 명칭은 참(站 ),관(館), 합배(合排)등으로 불렸는데 세조 3년에 역승을 혁파하고 찰방으로 대치하다가 153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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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영동지역의 고려시대 이름. 995년(성종 14) 지방행정구역을 10도로 나눌 때 함경도와 춘주(春州)·화주(和州)·명주(溟州) 등을 합하여 삭방도(朔方道)를 설치하였다. 1178년(명종 8)에 삭방도를 폐지하고, 함경도와 강릉 일대의 해안지방을 연해명주도(沿海溟州道), 춘천·철원 일대의 영서지방을 동주도(東州道)라고 개칭하였다. 1263년(원종 4)에 연해명주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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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에 있었던 초기국가. 1915년에 ‘예국토성지(濊國土城址)’라고도 불리는 강릉토성지(江陵土城址)가 발굴조사되었는데, 총연장 2,800m, 누(壘)는 0.5~12m이다. 이곳에서 빗살무늬토기편과 민무늬토기편이 출토되었다. 『임영지(臨瀛誌)』에 의하면 ‘예국토성지’는 조선시대에 폐기되었다고 기록되었는데, 예국의 소군장(小君長)인 후(侯)가 거처하는 성읍(城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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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 오근산에 위치한 봉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우계현 북쪽 20리에 있다. 남쪽으로는 어달산(於達山)에 응하고 북쪽으로는 해령산(海靈山)에 응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상에 백두대간 중 강릉~임계에 이르는 백두대간의 안부(鞍部)인 삽당령 바로 밑에서 동으로 갈라진 산줄기가 점차 고도를 낮추어 뻗어오다가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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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일대에 있던 옛 고을 이름. 신라는 삼국통일 이후 중국식으로 행정체계를 갖추고 전국을 9주(州)로 정비하였다. 9주는 원 신라 지역에 3개 주, 옛 고구려 지역에 3개 주, 옛 백제 지역에 각각 3개 주씩을 두었다. 그리고 9주의 군현 명칭은 경덕왕 때에 이르러 한화정책(漢化政策)의 일환으로 향음(鄕音) 표기하던 것을 한자식 표기로 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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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진리에 있었던 봉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북쪽으로 양양부(襄陽府) 양야산(陽野山)에 응하고 남쪽으로 사화산(沙火山)에 응하고, 연곡현 북쪽 12리에 있으며 부와는 42리 거리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상에는 백두대간 중 오대산에서부터 동으로 갈라진 지맥이 양양부와 경계를 이루다가 약간 남동쪽으로 꺾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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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토착하고 있던 재지 씨족집단의 성씨에 대한 총칭. 강릉은 토성들의 재지적 기반이 강했던 지역이다. 토성은 대체로 고려시대의 향리출신으로서 여말선초에는 신흥사대부를 성장시켰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조선 초기 강릉 지방 성씨에 대해 “토성이 여섯이니 김(金)·최(崔)·박(朴)·곽(郭)·함(咸)·왕(王)이요, 사성(賜姓)이 하나이니 옥(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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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사람이나 단체 간에 정보를 효과적으로 교환하는 과정 및 체계. 통신은 인사, 안보, 인사 이동, 첩보, 죽음 등의 소식이나 정보 등을 주고받는 과정 및 체계를 말한다. 곧 정보 교환이라 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 인류는 그동안 많은 수단을 개발·이용하여 왔다. 예를 들면, 사람이 직접 오가면서 소식을 전하는 인편, 말과 역을 이용하는 역마(驛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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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취락을 배경으로 하천과 강릉 지방의 동해 바다가 만나는 곳. 동해안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형성된 포구(浦口)는 교통수단과 물산 유통의 요충지이다. 포구는 바다로 통하는 출입구로서 포구 주위에는 마을 내지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강릉 동해안 지역 포구의 지리적 특성은 서쪽에서 동해로 흐르는 하천이 동해 바다와 맞닿은 곳에 발달하였다. 강릉의 군선강, 남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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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해령산에 위치한 봉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남쪽으로 오근산(五斤山)에 응하고 북쪽으로 소동산(所同山)에 응하고 부동쪽 27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상에는 연결되어 있지 않고 안인포(安仁浦) 북쪽에 자리 잡은 평탄지상에 위치한 잔구이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해령(海令)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