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08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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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譚 |
영어음역 | Kim Dam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도식 |
성격 | 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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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김광복(金光輻) |
어머니 | 심희전(沈希佺)의 딸 |
출신지 | 강릉 |
성별 | 남 |
생년 | 1522년(중종 17) |
몰년 | 1605년(선조 38) |
본관 | 강릉 |
제향 | 강원도 강릉시 율곡로 2920-16[교동 238-3] 향현사 |
대표관직 | 동지중추부사 |
[정의]
조선 중기의 효자.
[가계]
본관은 강릉. 김주원의 후손으로 부친은 낭장(郞將) 김광복(金光輻)이고, 모친은 삼척심씨 군수(郡守) 심희전(沈希佺)의 딸이다.
[생애]
1539년(중종 34) 초시(初試)에 뽑혔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고향에서 부모를 봉양하였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후 김담의 나이 70세에 동지중추부사의 벼슬을 받았다.
[활동사항]
아버지가 병이 났을 때는 변을 맛보기도 하였고, 아침저녁으로 북두칠성에게 자신의 목숨을 부친의 것과 대신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너무나 슬퍼하여 제상(祭床)에 술잔을 드리면 산 사람이 마시는 것처럼 술잔이 저절로 말랐다고 한다. 3년 동안 여묘살이를 하면서 오로지 죽만 먹었고, 너무 울어 눈에서 피가 나와 장님이 되었다. 그의 눈이 안보이게 되자 그의 아들 김경황(金景滉)과 김경시(金景時)는 정성을 다하여 약을 구하러 다녔다. 그러던 중 갑자기 허공에서 3년 묵은 된장을 세 말만 먹으면 낫는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된장 1석을 모아 보냈더니 눈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인종·명종의 국상 때에는 상복을 입고 3년 동안 고기를 먹지 않았고, 친척이나 친구의 상 때에도 이와 마찬가지로 하였다. 충·효행이 조정에 알려 요역(徭役)을 면제받았고, 여러 번 상직(賞職)을 내렸으나 어머니를 봉양해야 한다는 이유로 벼슬하지 않았다. 양사언(楊士彦)이 강릉부사로 왔을 때에도 또 천거하였으나 역시 나아가지 않았다. 때마침 진부면과 대화면에 가뭄과 황충이 매우 심하였다. 그때 양사언의 간청으로 진부면에서 2년, 대화현에서 3년간 판관(判官)의 일을 대행(代行)하며 가뭄과 황충을 잘 다스렸다. 양사언이 “하늘이 효자를 먼저 알고 효자를 도왔다”라고 하였다. 김담의 나이 70세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이전의 부친상과 마찬가지로 슬퍼하였다.
[묘소]
강원도 강릉시 장현동 면암(綿菴) 선영에 있다.
[상훈과 추모]
선조 대에 정려를 받았으며, 아들 김경황과 김경시, 손자 김한(金垾)이 모두 효행으로 정려를 받았다. 사람들은 그들을 ‘삼세사효(三世四孝)의 가문’이라 칭하였다. 삼세사효 효자각[삼세사효지려]이 강원도 강릉시 노암동에 있다. 또한 강릉 12향현의 한 사람으로 강원도 강릉시 율곡로 2920-16[교동 238-3번지]에 있는 향현사와 강원도 강릉시 노암동 240번지의 보진재에서 제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