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6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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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九谷里龜山洞常山林氏世居地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민식 |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에 있는 상산 임씨 세거지.
[명칭유래]
구곡리(九谷里)는 원래 구산동(龜山洞)으로 불린 곳으로 구곡리에서 평산리로 넘어가는 굴고개[일명 굴티]를 기준으로 내구와 외구로 나뉜다. 구산동이란 지명도 굴고개에서 유래하였다고 여겨진다.
[형성 및 변천]
상산임씨(常山林氏) 시조 임희(林曦)는 신라 말 진천 지역의 호족으로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 건국에 공을 세웠다. 임희의 딸이 2대 혜종(惠宗)의 비인 의화왕후(義和王后)가 되어 흥화부원군(興化府院君)에 봉해진 뒤 후손들이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을 터전으로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고려시대 무인 정권 시기에 이르러 후손 임연(林衍)[?~1270]은 고향에서 몽골의 침입을 물리친 뒤 김준(金俊)의 천거로 관직에 나아갔다. 1258년(고종 45) 최씨 무인 정권의 마지막 인물인 최의(崔竩)를 죽이고 왕권을 회복한 공로로 위사공신이 된 뒤 권력을 오로지하였으나 끝내 병사하였고, 아들 임유무(林惟茂)[?~1270]가 권력을 승계하였으나 3개월 만에 살해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임수전(林秀荃)[?~1592]이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북상하다가 죽산(竹山)에서 왜군을 맞아 항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전사하였고, 임수전의 아들 임현(林賢)[?~1619]은 1618년(광해군 10) 후금의 침입을 받은 명에 원군으로 파견되었다가 전사하였다. 1699년(숙종 25) 관찰사 송규렴(宋奎濂)의 주청으로 임수전은 형조참의로, 임현은 공조참의로 증직되었다. 1721년(경종 1) 임수전과 임현 부자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구곡리에 임수전 부자 충신문(林秀荃 父子 忠臣門)이 세워졌다.
[자연환경]
전체적으로 북서-남동 방향으로 길게 형성된 곡부 양쪽에 마을이 들어서 있다. 약 150~160m의 낮은 산자락이 마을을 둘러싸고, 오른쪽으로 미호천(美湖川)이 북에서 남으로 흐른다. 중부고속도로가 미호천을 따라 지난다.
[현황]
2010년 2월 28일 현재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마을에는 125가구에 총 258명[남자 138명, 여자 120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상산임씨이다. 상산임씨 관련 유적으로 임수전 부자 충신문, 임수전 부자 충신비(林秀荃 父子 忠臣碑), 임대철의 처를 기리는 은진송씨 열녀문(恩津宋氏 烈女門), 임연 장군 숭모비(林衍 將軍 崇慕碑)가 있다.
1990년 11월 후손들이 장렬사(莊烈祠)를 세우고 임희와 임연, 임구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마을 동남쪽 세금천(洗錦川)에는 고려 고종 때 임연 장군이 놓았다고 전해 오는 진천 농다리[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8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