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6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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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老院里老谷-平山申氏世居地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 노곡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민식 |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에 있는 평산 신씨 세거지.
[명칭유래]
이월면은 조선 말기 이곡면(梨谷面) 지역으로 25개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월촌면(月村面)의 26개리, 만승면(萬升面)의 8개리, 방동면(方洞面)의 매산리(梅山里), 덕문면(德文面)의 중가리(中加里), 음성군 대조면의 미곡리, 사다면의 사산리를 병합하고 이곡의 ‘이’자와 월촌의 ‘월’자를 따서 이월면이라 하였다.
노원리(老院里)는 노은곡(老隱谷)으로 불렸다. 1914년 노곡리(老谷里)·서원상리(書院上里)·서원하리(書院下里)·관동(官洞)·신흥리(新興里) 일부를 합쳐 노곡의 ‘노’자와 서원의 ‘원’자를 따서 노원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1568년(선조 1) 신잡(申磼)[1541~1609]이 처조부의 상(喪)을 당하여 이월면 내촌리 당골에 들렀다가 지방 교육이 부진함을 안타깝게 여겼다. 1608년(선조 42) 낙향하여 이 지역 출신 인재(麟齋) 이종학(李鍾學), 모암(慕菴) 김덕숭(金德崇), 송미(松尾) 이여(李畬), 행원(杏園) 이부(李阜)를 배향하는 백원서원(百源書院)을 세워 후학을 양성하기 시작하면서 후손들이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백원서원은 1669년(현종 10) 사액되었다가 조선 말기에 훼철되었다.
신잡은 1609년(광해군 1) 68세로 세상을 떠나 서울 상도동에 묻혔다가 1975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묻혔다. 묘소 이장에 앞서 1774년(영조 50) 후손들이 영정을 모시는 영당을 건립하면서 향촌 사회에서의 위상을 정립하였다. 신잡의 아들 신경희(申景禧)[1561~1615]는 음보(蔭補)로 벼슬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지내다가 1615년(광해군 7) 무고로 장살되었다. 1623년(인조 1) 무고임이 밝혀져 신원되었다.
신대구(申大龜)[1745~1806]는 이월면 노원리에서 태어나 1777년(정조 1) 문과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1806년(순조 6) 병조참의에 올랐고, 사후 예조참판에 추증되었다. 묘소는 백곡면 용덕리 용진마을에 있다.
신헌(申櫶)[1810~1888]은 1828년(순조 28) 무과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외교 수완이 뛰어났다. 노후에 고향인 이월면 노원리 노곡마을에 내려와 여생을 보냈다. 묘소는 강원도 춘천의 시조 묘 부근에 있다.
신헌의 아들 신정희(申正熙)[1833~1895]는 1849년(헌종 15) 16세에 무과에 급제한 뒤 아버지에 이어 포도대장과 어영대장을 역임하였다. 청일전쟁이 일어나자 비통함을 참지 못하고 병사하였다. 묘소는 신헌 묘소 아래에 있다.
진천군에는 평산신씨 문희공파, 제정공파(齊靖公派), 사간공파(思簡公派)가 주로 거주하고 있다. 문희공파는 조선 세종 때 좌의정을 지낸 문희공 신개(申槩)를 파조로 한다. 신개의 증손 신상(申鏛)은 중종 때 판서를 지냈다. 신잡은 신상의 손자이다.
신잡의 둘째 아들 신경지(申景祉)[1563~1592]는 음보로 벼슬길에 나아가 훈련원봉사·선공감직장·사헌부감찰을 지냈고, 만경현감 재임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숙부 신립(申砬) 장군을 따라 충주 탄금대 전투에 참전하였다가 전사하였다. 신잡의 5대손 신한주(申漢柱)[1696~1778]는 백원서원에서 수학하였고 광주(光州) 운암사(雲巖祠)에 배향되었다.
신잡의 9대손 신명직(申命稷)[1815~1894]은 진사시에 합격한 뒤 음보로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거쳐 돈녕부사를 끝으로 낙향하였다. 신잡의 9대손 신명훈(申命勳)[1828~1904]은 음보로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거쳐 둘째 형 신명직과 함께 낙향하였다. 신잡의 9대손 신명우(申命雨)[1806~?]는 중추부동지사를 역임하였다.
신협(申脥)은 효자로 이름나 승정원좌승지로 증직되었다. 신팔균(申八均)은 1902년(고종 39)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정위로 강계진위대에서 근무하다가 경술국치를 당하자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서로군정서 교관, 신흥무관학교 교관, 통의부 군사위원장 겸 총사령관을 지냈다.
[자연환경]
이월면 일대는 서쪽에 남북으로 약 400~500m 높이의 산맥이 길게 이어져 있고, 동쪽은 미호천(美湖川)의 지천이 남북으로 흐르면서 평야와 낮은 구릉지를 형성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은 지형으로 국도 좌우로 자연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현황]
2010년 2월 28일 현재 노원리 노곡마을에는 총 74가구에 156명[남자 85명, 여자 71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이 가운데 평산신씨는 11가구에 30명이 살고 있다. 진천읍에서 국도 17호선을 따라 북쪽 광혜원면 방면으로 가다가 이월면 소재지 직전 왼쪽으로 노원리 노곡마을 표지가 보인다. 국도 17호선이 중부고속도로와 평행하게 남북으로 뻗어 있다.
노곡마을 입구에는 청주한씨 열녀문(淸州韓氏 烈女門)이 있다. 청주한씨는 신의양(申義養)의 부인으로 1804년(순조 4) 남편이 죽자 장례를 마치고 따라 죽어 1834년(순조 34)에 정려가 내려졌다.
마을 입구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서면 1850년경 신헌이 건립한 진천 신헌 고가가 있다.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주차장을 겸하는 바깥마당에서 서쪽으로 노은영당(老隱影堂)과 묘소가 보인다.
노은영당에는 1607년(선조 40) 신잡이 개성유수로 재임할 때 그린 「신잡 영정(申磼 影幀)」이 모셔져 있다. 영당 뒤쪽에는 신화국(申華國)[1517~1578]·신잡·신경희의 묘소가 순서대로 자리 잡고 있다. 1970년 이장한 신화국 묘소에서는 출토된 묘지(墓誌)는 충청북도 민속자료 제7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