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06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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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淳弼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태현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3월 18일 - 강순필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에서 3·1운동 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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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18일 - 강순필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 3·1운동 참여 |
출생지 | 화도면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
활동지 | 화도면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정의]
경기도 남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강순필(姜淳弼)[?~?]은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에 해당하는 양주군 화도면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1919년 경기도 남양주 지역에서 3·1운동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화도면[현 남양주시 화도읍]에서도 마을 주민들이 만세 운동을 추진하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었다. 특히 월산교회 교인 이인하(李麟夏)·이택주(李宅周)·김우동(金愚東)·김필규(金弼圭)와 화도면 월산리[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마을 주민 이달용(李達鎔)·이승보(李承輔)·이재하(李載夏)·이덕재(李德在)·이택하(李澤夏)·유인명(柳寅明)·홍순철(洪淳哲)·윤태익(尹泰益) 등이 거사를 모의하였다. 하지만 1919년 3월 16일 일본 경찰에 의하여 거사가 사전에 발각되었고 이승보·이재하·이택하가 그만 체포되고 말았다.
그러자 이승보·이재하·이택하의 석방을 촉구하기 위하여 마을 주민들은 1919년 3월 18일 밤 10시경 수십 명의 군중이 화도면 마석우리[현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우리]에서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고, 점차 수가 늘어나서 200명이 되었다. 그러자 강순필도 1,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화도면 마석우리에 있는 헌병주재소로 몰려가서 구금자 석방을 요구하였다. 일본 헌병대는 시위의 규모가 커지고 분위기가 과열되자 시위 군중을 향하여 무차별 발포를 시작하였다.
이때 김필규와 강선원(姜善遠)·권은(權慇)·남궁우룡(南宮又龍)은 체포되었고, 일본 헌병대의 총격에 의하여 이달용과 손복산(孫福山)·신영희(申榮熙)·유상규(兪相奎)·이교직(李敎稙) 등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을 당하였는데, 강순필도 중상을 입으면서 시위대와 함께 해산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