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우룡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702
한자 南宮又龍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조형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7년 3월 19일연표보기 - 남궁우룡 출생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남궁우룡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에서 3·1운동 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남궁우룡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 3·1운동에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5월 12일 - 남궁우룡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개월 선고
활동 시기/일시 1919년 9월 17일 - 남궁우룡 가출옥
몰년 시기/일시 1970년 1월 27일연표보기 - 남궁우룡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19년연표보기 - 남궁우룡 대통령표창 추서
출생지 월산리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월산리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활동지 월산리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성격 남궁우룡
성별 남성
대표 경력 3·1운동

[정의]

경기도 남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남궁우룡(南宮又龍)[1897~1970]은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에 해당하는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 월산리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화도면 월산리의 3·1운동은 화도면에 거주하던 이달용(李達鎔) 등의 주도 아래 비밀리에 추진되다가 1919년 3월 16일에 사전 발각되었고, 이때 이택하(李澤夏), 이재하(李載夏), 이승보(李承輔) 등 다수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07년 설립된 월산교회와 배인학당에서 선교와 교육 양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고 있던 김필규(金弼圭)는 전열을 정비하여 1919년 3월 18일로 거사일을 다시 정하고 독립 만세 시위를 조직하였다.

1919년 3월 18일 화도면 월산리와 답내리[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답내리] 일대의 주민이 총궐기하여 면사무소가 있던 화도면 마석우리[현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우리]로 행진하였다. 남궁우룡도 이틀 전 시위 계획이 발각됨에 따라 체포된 이재하 등의 석방을 요구하며 헌병주재소 앞에서 독립 만세를 외쳤다. 행진을 시작할 때 200여 명에 불과하였던 시위 군중은 어느새 1,000여 명으로 늘어났고, 이에 일본 헌병대는 시위대를 향하여 총격을 가하며 독립 만세 운동을 탄압하였다.

일본 헌병대의 발포로 이달용을 비롯하여 손복산(孫福山), 신영희(申榮熙), 유상규(兪相奎), 이교직(李敎稙) 등 5명이 현장에서 순국하였고 중상자도 다수 발생하였다. 1919년 3월 19일 새벽에는 김필규, 강선원(姜善遠), 윤준(尹俊), 김원석(金元石) 등 다수의 인사가 만세 시위 주동자로 지목되어 체포되었다. 남궁우룡은 1919년 5월 12일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에서 소위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 생활을 이어 가다가 1919년 9월 17일 가출옥되었다.

[상훈과 추모]

남궁우룡의 공훈을 기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답내리 월산교회 앞마당에 1993년에 세운 3·1운동 기념비가 있어 남궁우룡을 비롯한 당시 화도면 월산리 만세 시위 참여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99번지에도 남궁우룡을 비롯하여 화도면 일대의 만세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한 3·1운동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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