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0782 |
---|---|
한자 | 洪淳哲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조형열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3월 18일 - 홍순철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에서 3·1운동 발생 |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18일 - 홍순철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 3·1운동 참여 |
출생지 | 월산리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
활동지 | 화도면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경기도 남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홍순철(洪淳哲)[?~?]은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에 해당하는 양주군 화도면 월산리 출신이다.
[활동 사항]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일대를 포함하는 경기도 양주군 지역의 3·1운동은 각 면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중 화도면 월산리[현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의 3·1운동은 화도면에 거주하던 이달용(李達鎔) 등의 주도 아래 추진되었으며, 마을 지도자 중 한 명이었던 홍순철도 사전 모의에 동참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9년 3월 16일 일본 경찰에 3·1운동 거사가 사전 탐지되었고, 이택하(李澤夏), 이재하(李載夏), 이승보(李承輔) 등 여러 명이 체포되었다.
화도면 월산리의 3·1운동은 1907년 설립된 월산교회와 배인학당에서 선교와 교육 양면에 걸쳐 주도적인 역할을 맡고 있던 김필규(金弼圭)가 전열을 정비하고 1919년 3월 18일로 거사일을 다시 정하면서 재추진되었다. 1919년 3월 18일 화도면 월산리와 답내리[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와 답내리] 일대의 주민이 총궐기하여 면사무소가 있던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 마석우리[현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우리]로 행진하였다. 시위대는 체포된 이재하 등의 석방을 요구하며 헌병 주재소 앞에서 독립 만세를 외쳤다. 행진을 시작할 때 200여 명에 불과하였던 시위 군중은 어느새 1,000여 명으로 늘어났고, 이에 일본 헌병대는 시위대를 향하여 총격을 가하며 독립 만세 운동을 탄압하였다.
일본 헌병대의 발포로 신영희(申榮熙), 손복산(孫福山), 이달용, 유상규(兪相奎), 이교직(李敎稙) 등 5명이 현장에서 순국하였고 중상자도 다수 발생하였다. 1919년 3월 19일 새벽에는 김필규, 강선원(姜善遠), 윤준(尹俊), 김원석(金元石) 등 다수가 시위 주동자로 지목되어 체포되었다. 홍순철은 시위를 사전 조직하는 과정에 관여하였다는 이유로 일제로부터 고문과 고초를 겪었다고 전하여진다. 홍순철은 투옥되었으나 수감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상훈과 추모]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에서 전개된 3·1운동에 대하여서는 경기도 남양주시와 월산교회 차원의 추모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화도읍 답내리 월산교회 앞마당에는 3·1운동에 참여한 홍순철 등을 기념하고자 1993년에 설립한 3·1운동 기념비가 건립되어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99번지에도 홍순철을 비롯하여 만세 시위에 참여한 이들을 기리기 위하여 3·1운동 기념비가 건립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