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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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化藝術 |
영어공식명칭 | Culture and Arts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영희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문화 예술 활동, 문화 정책, 문화 예술과 관련된 단체와 제도.
[개설]
세종특별자치시는 옛 충청남도 연기군 전체와 공주시 일부[현 장군면], 충청북도 청원군 일부[현 부강면]을 편입하여 2012년 7월 1일 출범하였다. 행정중심복합도시 역할을 기대하며 세종대왕의 묘호를 딴 도시이다.
세종특별자치시는 2019년부터 2045년까지 세종 지역 인구추계 자료를 살펴보면 누적 기준으로 2019년까지 약 35만명, 2034년까지 약 50만명, 2045년에는 약 56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계할 수 있다.
도시 발전 가운데 지역 문화예술의 흐름은 변화하고 있으며, 세종특별자치시는 문화예술 흐름을 파악하기 위하여 2019년 문화예술인 현황을 조사·연구하고 있다.
조사 결과에 따라 세종특별자치시는 문화예술 정책 수립을 준비할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 예술 기관]
세종시문화재단은 2016년 11월에 설립되었다. 삶과 지혜를 나누는 행정수도 문화재단이라는 비전과 3대 목표 하에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예술교육 실현을 포함한 6대 전략을 수립하였다.
세종특별자치시 특화 문화예술교육 모델 정립 및 확산, 창의적 미래인재 양성을 위한 학교예술교육 활성화, 지역 특성에 부합하는 생활문화 예술교육 기반 조성 등 추진 과제를 제시해 관련 세부 사업을 운영하여 세종 지역의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기반을 다지고 있다.
세종문화원은 1962년에 조치원문화원이 설립되어 도원문화제를 비롯한 각종 문화행사를 주관하고, 기관지 『문화시보(文化時報)』를 발간하여 향토문화 계승과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세종특별자치시 출범과 더불어 세종문화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세종문화원은 각종 행사, 발표회, 세미나, 공연 등이 진행될 수 있는 대강당과 소강당 및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부설기관으로는 세종지역 향토사를 조사·연구하는 ‘세종향토사 연구소’, 우리 전통 소리를 통하여 지역종사 및 자기계발을 하는 ‘세종소리예술단’, 세종 지역 웃다리 농악을 시민에게 보급하여 계승 발전시키는 ‘세종풍물단’이 있다.
세종문화원은 또한 초등학생, 중학생, 청소년 장애인, 어르신 등 다양한 대상을 위한 문화예술 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세종특별자치시연합회[세종예총]는 2016년 11월 15일 설립되어 1·2회 회장을 선임하고 운영 중에 있다. 국악, 음악, 미술, 연극, 연예, 영화, 사진, 무용, 문인 등 9개 지회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세종지회[세종민예총]는 세종 지역 민족예술인들이 결성한 문화예술단체이다. 지역 문화예술과 자유와 평등적 사회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2013년 2월 19일 정식 지회로 승격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세종시민회관은[전 연기군민회관]은 1988년 5월 19일 개관한 이래 2000년에 세종문화예술회관이 개관하기까지 세종 지역의 유일한 문화예술 요람 역할을 하였다. 연기군[현 세종특별자치시]이 운영하다가 2004년 7월 1일 세종문화원에서 세종시민회관 운영을 맡고 있다.
세종특별자치시[전 연기군]를 상징하는 유일한 문화예술공간으로 출발하여 예술인은 물론 일반 시민들의 다양한 예술 활동 기회 부여와 함께 공공 교육의 편의 도모를 위한 공간 제공 등 일반 시민들이 항상 이용할 수 있는 열린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세종 지역과 연관성을 띤 박물관은 교과서박물관, 연기향토박물관, 산림박물관, 외딴말박물관, 시립민속박물관, 국립조세박물관 등이 대표적이다.
[문화 예술인]
세종 지역과 연관성을 띤 문화 예술 활동을 한 이는 윤조병(尹朝炳)[작가], 김제영(金濟英)[소설가], 장욱진(張旭鎭)[화가]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 사실주의 희곡의 계승자’ 윤조병은 1939년 조치원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법대를 중퇴하고 1967년 국립극장 장막희곡 공모에 「이끼 낀 고향에 돌아오다」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인천시립극단 초대 상임연출, 한국공연윤리위원회 무대예술 전문심사위원과 한국연극협회 극작분과 위원장,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한국본부 이사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윤조병의 초기 대표작으로는 「참새와 기관차」, 「농토」가 꼽힌다. 두 작품은 각각 1978년 현대문학상과 1981년 대한민국연극제 대상을 수상하였다. 모두 고향을 배경으로 하였다는 점이 공통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학·예술 선구자’ 김제영은 1928년 제주도에서 출생하여 1956년 조치원에 정착하였다. 6·25전쟁 피란 시절에 만난 남편이 조치원 의원을 개원하면서 정착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착 이후 단편소설 「석려」가 196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가작)으로 입선하였다. 1956년 『백수문학』 창간 이후에는 초기 멤버로 활동하면서 지역 문인들과 교류하였다.
화가 장욱진(張旭鎭)은 1918년 1월 충청남도 연기군 송용리에서 태어났다. 장욱진은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에 몰입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때도 일본 동경의 제국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하였다.
해방 직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잠시 근무한 후 1954년부터 1960년까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근무한 것 외에는 줄곧 한적한 시골-덕소, 수안보, 신갈 등지에 화실을 마련해서 오로지 그림에만 전념하였다.
장욱진은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등과 함께 한국의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2세대 서양 화가이다. 장욱진은 가족이나 나무, 아이, 새 등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박한 소재들을 주로 그렸다. ‘사실을 새롭게 보자’라는 주제 의식으로 1947년에 김환기, 유영국 등과 ‘신사실파(新寫實派)’라는 미술단체를 창립하였다. 신사실파의 철학에 의하여 장욱진은 자연 사물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 안에 내재하여 있는 근원적이고 정신적인 본질을 추구하였다.
2019년 기준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내판리에 장욱진 탑비가 있다. 1986년부터 1990년에 작고할 때까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거주하였고, 거주한 가옥은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 제404호로 지정되었다. 경기도 양주시에는 장욱진 미술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