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1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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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鳳岩里[燕西面] |
영어공식명칭 | Bongamri |
이칭/별칭 | 봉바위,부엉바위,봉암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봉암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심정보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마을 주변에 봉황을 닮은 바위가 있어 봉바위, 부엉바위, 봉암 등으로 불리었다. 봉암(鳳岩)은 봉바위[부엉바위]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봉암리에는 봉암, 주막거리 등 자연 마을이 있다.
봉암리는 1리·2리·3리로 되어 있다. 처음 사람이 살면서 마을을 형성한 곳은 봉암2리이다. 현재의 봉암마을이다. 주막거리마을은 봉암 뒤의 마을로, 큰 길가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주막이 많아서 붙은 명칭이다. 마을 입구의 비옥한 논은 고래실이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 통일신라시대에는 연기현, 고려시대에는 청주목, 조선 전기에는 연기현, 조선 후기에는 연기군(燕岐郡) 북이면(北二面) 지역이었다. 1914년에는 연기군 북이면 봉암리 일부와 군내면 봉암리 일부를 병합하여 연기군 서면 봉암리(鳳岩里)가 되었다. 2012년 7월에는 세종특별자치시 출범으로 충청남도 연기군 서면 봉암리에서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봉암리로 변경되었다.
[자연환경]
봉암리 마을 동쪽에 있는 봉암[75.2m]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저지대의 평지이다. 마을 북쪽은 북서에서 흘러내린 월하천이 남동을 지나 미호천과 합류한다. 남쪽은 서쪽 와촌리 산지에서 발원한 봉암천이 남동으로 흘러 미호천으로 유입한다. 지대가 약간 높은 곳에는 가옥, 밭, 과수원 등이 있다. 월하천과 봉암천 주변의 저지대에는 논이 분포한다.
[현황]
연서면 남동쪽에 있는 봉암리의 면적은 3.3㎢이다. 인구는 2020년 8월 기준 1,465가구에 총 2,899명이다.
마을에서는 주로 벼농사, 밭농사, 과수 재배가 행하여진다. 딸기 재배로 유명한 무지개농장은 주말농장으로, 일반인과 학생들이 농업 관람 및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기관으로는 세종연서우체국이 있으며, 1946년에 개교한 연봉초등학교가 있다. 교통은 지방도와 일반국도가 남북으로 관통한다.
봉암리는 진주강씨, 밀양박씨, 파평윤씨 순으로 들어와 살면서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마을에는 파평윤씨 조상의 묘소, 선조들의 설단·사당 등이 남아 있다. 독립 유공자 윤봉균의 묘소와 공덕비도 있다.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연봉초등학교 건너편에 윤태풍의 처 경주최씨 정려가 세워져 있다. 열녀 경주최씨 정려는 현재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25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편 마을에는 보림사가 현존하지만 봉암서원과 봉황정이라는 정자는 모두 없어지고 터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