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0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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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京山里 |
영어공식명칭 | Gyeongsa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재범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경산리(京山里)는 성주읍의 중심부에 자리하여 예로부터 성주 지역의 정치, 행정, 경제, 산업의 중심지였으며, 일찍부터 장시(場市)가 설치되어 상업이 발달하였다.
[명칭 유래]
경산리가 속한 일대 지역은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이총언(李悤言)을 비롯한 지역 토호들의 활약에 힘입어 940년(태조 23) 경산부(京山府)로 승격하였다. 경산부의 읍기(邑基)로 발전하면서 경산(京山)이라 불렸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경산동(京山洞)이 되었고, 1988년 동(洞)을 리(里)로 개편하면서 경산리가 되었다.
경산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의 지명은 조선 시대 이곳에 설치한 성주사고(星州史庫)와 성주읍성(星州邑城), 관아 등과 관련이 있다. 경산1리는 ‘사골[사동(史洞)]’이라고도 부르는데, 1439년(세종 21)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보관하기 위하여 설치한 성주사고와 관련 있는 지명이다. 현재 성주군청 쪽에서 벽진면으로 가는 방향에 자리한 경산2리는 ‘과아태’, ‘구아(舊衙)’, ‘고아(古衙)’ 등으로도 불린다. 조선 시대 관아(官衙)가 있던 곳이라 하여 관아터로 부르다가 과아태로 음이 변하였다고 하고, 또 고아나 구아라는 명칭도 이와 관련하여 생겨났다고 한다. 서문밖, 성밖마을로 불리는 경산4리는 조선 시대 성주읍성의 서문(西門) 바깥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불린 이름이라고 한다.
[형성 및 변천]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성주읍 지역은 용산면(龍山面), 남산면(南山面), 본아면(本牙面), 북산면(北山面)의 4개 면으로 구성되었다. 당시 경산리는 지금의 삼산리, 성산리, 예산리와 함께 용산면에 속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경산동으로 하고 4개의 면[용산면, 남산면, 본아면, 북산면]을 통합한 성주면의 10개 법정동 중 하나로 편제하였다. 1979년 성주면이 성주읍으로 승격하면서 성주읍 경산동이 되었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각 동을 리로 개정하여 성주읍 경산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성주의 진산(鎭山) 인현산(印懸山)에서 용틀임한 산줄기가 성주읍 예산리와 경계를 이루는 북쪽 봉두산(鳳頭山)[80m]까지 이어지고, 다시 서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성주여자중학교와 성주여자고등학교가 있는 곳까지 낮게 연결되어 있다. 벽진면의 염속산[870m]에서 발원한 이천(伊川)이 경산리의 서쪽에서 남동 방향으로 흐른다. 성주읍성 서문 밖 하천 변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왕버들 군락지인 성주 경산리 성밖숲이 있다.
[현황]
경산리는 성주읍의 중앙에 자리하여 동부와 남부는 성주읍 성산리, 서부는 성주읍 대황리와 대흥리, 북부는 성주읍 백전리, 예산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0.71㎢이며, 경산1리와 경산2리, 경산3리, 경산4리, 경산5리, 경산6리, 경산7리, 경산8리의 8개 행정리에 1,938가구 4,038명[남 1,977명, 여 2,06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성주군청을 비롯한 행정 기관과 성주초등학교, 중앙초등학교, 성주여자중학교, 성주여자고등학교 등의 교육 기관이 자리하며, 성주 시장과 중심 가로를 따라 상업 시설이 늘어서 있고, 아파트와 주택 등 주거 시설이 밀집한 곳이다. 한편으로는 좁은 도로로 인한 교통 문제, 노후한 주거 환경, 외부 신규 택지 조성으로 원도심 공동화 현상이 생기면서 상권 위축이 진행되고 있고, 경산리 일원과 그 주변 지역을 대상으로 도시 재생 뉴딜 1차, 2차 사업이 진행 중이다.
문화 유적으로 성주 경산리 성밖숲, 성주 성산관[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쌍충사적비[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연계당 및 『연계소영건일록』[경상북도 문화재 자료]이 있다. 유교 문화 유적으로 봉산재와 성산재가 있으며, 불교 문화 유적으로 전통 사찰인 임정사와 관운사가 있다. 조선 시대 성주목의 관아 및 관방 유적으로 성주목 객사인 백화헌(百花軒), 성주 성산관(星州星山館), 성주읍성, 성주사고 등이 있었고, 기타 유적으로 겸재(謙齋) 정선(鄭敾)이 그린 「쌍도정도(雙島亭圖)」의 배경이 된 쌍도정을 비롯하여 임진왜란 유적인 관왕묘(關王廟)와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과 관련한 척화비 등이 있었으나, 백화헌과 성주사고, 성주읍성, 쌍도정 등은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소실되거나 철거되어 흔적만 남아 있다.
휴양 시설 및 공원으로 청사 도서관 뒤쪽에 성주 역사 테마 공원이 있는데, 성주읍성과 성주사고, 쌍도정 등 성주를 상징하는 문화 유적들을 복원하여 2020년 10월 개장하였다. 성주 경산리 성밖숲은 성주읍성 서문 밖 이천 변에 조성된 숲으로 300~500년 된 왕버들나무 52주가 무리 지어 있어 주민들이 휴식과 산책 공간으로 활용하며, 각종 축제와 문화 행사 등을 개최하기도 한다. 왕버들나무 아래쪽으로 맥문동을 심어 놓아 맥문동 꽃이 만개하는 7~8월에는 노거수인 왕버들나무의 짙푸른 녹음과 어우러진 보랏빛 맥문동 꽃의 향연이 펼쳐지며 장관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