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1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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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玉花里 |
영어공식명칭 | Okhwa-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옥화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경근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금파면의 중리(中里)[중마], 오현(梧峴), 남전(藍田), 행화(杏花)골을 합하여 ‘옥화동(玉花洞)’이라고 하였는데, ‘옥화’의 정확한 유래는 추정할 수 없다. 옥화1리의 자연 마을로 새뜸[새터·신기(新基)]과 중리(中里)[중마], 능골[능곡(陵谷)·오현(梧峴)]이 있고, 옥화2리의 자연 마을로 머징[머지이·뫼정·산정(山亭)·남전(藍田)]과 회화골[괴동(槐洞)·행화골·행화곡(杏花谷)·살구골·행촌(杏村)]이 있다.
새터는 대가면 금산리에서 옥화리로 넘어가는 국도 제33호선상의 당고개 너머에 자리한다. 새로 생겨난 마을이라 ‘새터’라고 하였으며, 또 ‘새뜸’ 혹은 ‘신기(新基)’라고도 한다. 중리는 새터에서 북쪽으로 회봉산(回峰山)[284.2m] 골짜기에 있는데 국도에서 약 500m 떨어져 있다. 능골에 살던 김 씨와 이 씨가 서로 다툰 후 이 씨가 새뜸과 능골 중간 지점으로 이주하여 살았다고 하여 ‘중마[중리(中里)]’라 불렀다고 전한다. 능골은 당고개에서 성주군 가천면 방향으로 국도 제33호선 오른쪽으로 100m 거리에 있다. 마을 뒷산의 모습이 능(陵)같이 생겼다고 해서 ‘능골’이라 이름 붙였다. 머징은 능골 아래에 자리한 마을로,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한 건물을 뫼정(山亭)이라 부르면서 ‘머지이’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 마을에는 여(吕) 씨가 많이 사는데, 원래 여 씨는 중국 남전(藍田)에서 왔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남전’이라 불렀다고도 전한다. 회화골은 머징 맞은편 국도 제33호선 건너편에 자리한 마을로, 마을 어귀에 당산목으로 인식되어 온 오래된 느티나무[槻木] 때문에 ‘회화골’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옛날에 살구나무가 많아서 ‘살구골’ 또는 ‘행촌(杏村)’이라 불렀는데 음이 변하여 ‘회야골’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형성 및 변천]
통일 신라 이후 대부분 지역이 금파곡방(今巴谷坊)에 속하였다. 1845년(헌종 11) 성주목사 김횡(金鑅)[1784~1847]이 금파곡방을 금파방(今巴坊)으로 바꾸었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금파면의 중리, 오현, 남전, 행화골을 합하여 옥화동으로 하고 금파면과 대가면, 사천면을 합한 대가면(大家面)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88년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대가면 옥화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북쪽에 250~300m 높이의 산지가 있고, 남쪽에는 300~350m 높이의 산지가 분포한다. 중앙을 북동-남서 방향으로 길게 가로지르며 평야 지대가 넓게 펼쳐져 있다. 남쪽 다락산(多樂山)[360.7m] 등의 산지에서 발원한 하천이 금곡[가능골] 앞을 지나 북서쪽으로 흐르고, 북쪽 회봉산 등의 산지에서 발원한 하천이 중마[중리] 저수지를 거쳐 능골 서쪽으로 흐르면서 하나로 모여 금곡천(金谷川)을 이룬다. 금곡천은 북동-남서 방향의 평야를 따라 남서류하여, 서쪽의 머징을 거쳐 대가면 도남2리 언천이 아래에서 도남천(道南川)에 유입된다. 이들 하천은 남쪽과 북쪽 산지 곳곳에 머릿골, 장골, 새우정골, 소래골, 갈마골, 뒷무지골, 절골, 밤지골 등의 골짜기와 썰물들, 새우정들, 솔랑전들, 말랑들, 싸근달들, 작은싸근달들, 섬들 등의 평야를 만들었다.
[현황]
옥화리는 대가면의 서쪽에 자리하여 동부는 대가면 금산리, 남부는 수륜면 송계리와 대가면 대천리, 서부와 북부는 대가면 도남리, 금수면 명천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2.74㎢이며, 옥화1리와 옥화2리 2개 행정리에 125가구, 236명[남 110명, 여 12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국도 제33호선이 옥화리의 중앙을 가로지르며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이어져 있다. 문화 유적으로 동강 김우옹 신도비(東岡金宇顒神道碑), 옥화리 고분군(玉花里古墳群), 성주 이씨(星州李氏) 중시조인 농서군공(隴西郡公) 이장경(李長庚)을 추모하기 위한 오현재(梧峴齋), 조선 후기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증직된 배이도(裵爾度)를 추모하기 위한 낙유재(樂裕齋), 옥화리 입석(玉花里立石)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