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146
한자 道南里
영어공식명칭 Donam-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도남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경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도남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도남동에서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도남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2.84㎢
가구수 119가구
인구[남/여] 193명[남 97명/여 96명]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신안(新安), 전인(全仁), 후포(後浦)와 보남(寶南)과 이천(伊川)의 일부를 합하여 도남동(道南洞)이라고 하였는데, 정확한 유래는 찾기 어렵다. 도남1리의 자연 마을로 자리섬[석도(席島)·성곡(城谷)·전인(全仁)]과 뒷개[후포(後浦)], 청룡(靑龍), 갈밭, 신안(新安)이 있고, 도남2리의 자연 마을로 언천[원천·은천(隱川)·이천(伊川)]과 보남이 있다.

자리섬은 국도 제33호선의 대천 삼거리에서 금수면 쪽으로 이어지는 군도 제1호선을 따라 2㎞ 정도 떨어져 있다. 마을 뒤 산성(山城) 아래에 자리하여 자리섬이라고 불렀다는 설과 산자락이 마을을 좌우로 둥글게 감싸서 섬처럼 보인다고 자리섬이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성 아래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성곡(城谷)이라고도 불렀다. 또 마을 뒤에 축성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산성이 있는데, 이 산성이 전인(全仁)이라는 장군이 축성하였다는 전설에 따라 전인이라고도 불렀다. 뒷개는 1920년[경신년] 대홍수로 마을 전체가 피해를 입어 도남천(道南川) 서쪽 현재의 자리와 인근 마을인 갈밭 마을과 청룡 마을로 이주하였는데, 도남천 건너편에 새로 이주한 마을도 그대로 뒷개라고 불렀다. 원래 이곳은 갯벌[천변]이었는데 이 갯벌 뒤[밖]로 마을이 있어 후포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고 성주 배씨(星州裵氏)의 선조가 이곳에 입향했을 때 마을의 형국이 행주형(行舟形)이어서 배가 떠난 뒤 남아 있는 나루라 하여 뒷개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청룡은 풍수지리의 형국도(形局圖)에서 말하는 청룡 줄기 끝에 자리한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원래는 몇 집밖에 살지 않던 외딴곳이었는데, 1920년 대홍수로 수해를 입은 뒷개 주민 일부가 이곳으로 이주해 오면서 마을이 커졌다. 갈밭은 마을 앞에 갈대가 많아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하는데, 이 마을 역시 1920년 대홍수로 수해를 입은 뒷개 주민 일부가 이주하면서 마을이 커졌다.

언천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데, 마을 앞을 흐르는 이천(伊川)의 이름을 따 마을 이름을 이천이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이천이 변해서 언천 또는 원천이라 부른다고 전하나 언천, 원천, 은천은 이천과는 별개로 어은천(漁隱川)에서 변한 발음으로 여겨진다. 보남은 마을 뒷산에 산재한 고분(古墳) 안에 많은 유물이 묻혀 있었다고 해서 불린 이름이라고 전한다.

[형성 및 변천]

통일 신라 이후 금파곡방(今巴谷坊)에 속하였다. 1845년(헌종 11) 성주목사 김횡(金鑅)[1784~1847]이 금파곡방을 금파방(今巴坊)으로 바꾸었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신안, 전인, 후포, 보남과 이천의 일부를 합하여 도남동으로 하고 금파면과 대가면, 사천면을 합한 대가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88년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대가면 도남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도남리 동쪽 갈밭 북동쪽에 솟은 회봉산(回峰山)[284.2m]이 금수면과 면계(面界)를 이루며, 서쪽은 북서쪽 도산(都山)[도장골산, 526.8m]에서 남동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동천산(東泉山)[291.3m] 등의 산지가 대가면가천면의 면계를 이룬다. 도남리 서쪽 경계를 이루는 산지에는 동쪽의 도남1리 뒷개와 보남에서 서쪽 가천면 중산리 머지미 마을로 넘어가는 개고개[336m]가 있다. 이들 산지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합쳐져 도남천을 이루고 남쪽으로 흘러 뒷개와 언천 마을을 거쳐 굴목이 마을 아래에서 대가천(大伽川)에 합류한다. 도남천 주변으로 자연 마을이 산재한다.

[현황]

도남리대가면 서쪽 도장골산의 남동쪽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동부와 남부는 대가면옥화리대천리, 서부와 북부는 가천면금수면이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2.84㎢이며, 도남1리와 도남2리 2개 행정리에 119가구, 193명[남 97명, 여 9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문화 유적으로 조선 후기 유학자인 등암(藤庵) 배상룡(裵尙龍)괴재(愧齋) 배상호(裵尙虎) 형제의 학덕(學德)을 추모하기 위한 도남재(道南齋)와 인산서당(仁山書堂), 그리고 영정을 봉안하고 향사를 지내는 영각(影閣)이 있고, 성산 배씨 고촌(孤村) 배정휘(裵正徽)와 배성휘(裵聖徽), 배원휘(裵遠徽), 배익휘(裵益徽), 배진휘(裵晉徽) 5형제를 추모하는 식호정(式好亭), 1902년(고종 39) 경상북도 관찰부 주사를 지낸 설강(雪岡) 성한영(成翰永)을 추모하기 위한 학고재(學古齋), 배덕문 신도비(裵德文神道碑), 배설 신도비(裵楔道南齋) 등이 있다. 자리섬 마을 뒷산 약 230m 높이에 가야 및 삼국 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이는 할미산성[노고산성(老姑山城)·전인산성(全仁山城)·적미산성(積米山城)]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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