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2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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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麗時代 |
영어공식명칭 | Goryeo Dynasty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명진 |
[정의]
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성주 지역의 역사.
[개설]
성주 지역은 신라 시대 본피현(本彼縣)이었다가 경덕왕(景德王)이 신안(新安)으로 고쳐 성산군(星山郡)에 붙였다가 뒤에 벽진군(碧珍郡)으로 고쳤다. 신라는 889년(진성 여왕 3)부터 실정(失政)으로 인하여 전국이 일시에 분열되었다. 이처럼 혼란한 시기에 이총언(李悤言)이 이 지역을 잘 지키고 다스렸기에 이 지역의 민(民)은 다소 평안할 수 있었다. 이총언은 벽진군 장군(碧珍郡將軍)이자 성주(城主)였다.
[행정 구역 변천]
918년 고려를 건국한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경상도 일대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유력한 지역 세력[호족]의 도움이 필요하였다. 당시 성주 일대는 이총언의 세력이 명망을 얻고 있었기에 왕건은 이총언을 포용하였다. 마침내 936년(태조 19) 왕건은 통일 고려를 완성하였다. 당연히 이총언과 벽진군은 왕건에게 충성한 대가로서 합당한 대우를 받았다.
왕건의 치세인 940년(태조 23) 벽진군은 경산부(京山府)로 승격하였다. 그러다가 경종(景宗)이 981년(경종 6) 광평군(廣平郡)으로 강등시켰고, 성종(成宗) 때인 995년(성종 14)에는 대주도단련사(岱州都團練使)라고 하였다. 현종(顯宗) 때인 1012년(현종 3) 단련사를 폐지하고 1018년(현종 9) 다시 경산부라고 하였다. 시간이 흘러 충렬왕(忠烈王)이 1295년(충렬왕 21) 흥안도호부(興安都護府)로 승격시켰다가 다시 1308년(충렬왕 34) 성주목(星州牧)으로 승격하였다. 1310년(충선왕 2)에는 여러 목이 없어지면서 다시 경산부가 되었다. 이렇듯 고려 시대 내내 성주는 대체로 경산부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고려 시대 경산부는 1개의 속군과 14개의 속현을 가지고 있었던 큰 고을이었다. 속군은 고령군이었고, 속현은 약목현과 인동현, 지례현, 가리현, 팔거현, 김산현, 황간현, 관성현, 안읍현, 양산현, 이산현, 대구현(大丘縣)[현 대구광역시 일대], 화원현, 하빈현 등 14개였다. 그런가 하면 경산부는 신곡부곡(薪谷部曲), 위곡부곡(葦谷部曲), 선남부곡(船南部曲) 등 세 개의 부곡도 관할하였다. 이를 통해 경산부가 고려 시대 경상도 일대의 주요한 고을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