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경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677
한자 李延慶
영어공식명칭 I Yeongyeong
이칭/별칭 흥안군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명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355년 - 이연경 흥안군으로 임명
출생지 이연경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부임|활동지 이연경 활동지 - 황해북도 개성시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성주
대표 관직 흥안군

[정의]

고려 후기 성주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성주. 이연경(李延慶)문열공(文烈公) 이조년(李兆年)[1269~1343]의 아우[또는 조카]이다. 성주 이씨이연경의 선조는 대대로 경산부(京山府)[현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향리를 지냈다. 시조 이순유(李純由)의 12세손 이장경(李長庚)의 아들 대부터 가계의 명성이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이장경은 아들의 이름을 퍽 재미있게 지었다. 첫째는 이백년(李百年)이고, 둘째는 이천년(李千年)이고, 셋째는 이만년(李萬年)이고, 넷째는 이억년(李億年)이고, 다섯째 아들이 이조년이다. 이장경은 집안이 오래도록 번창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아들의 이름에 담았다. 특히 이조년이 과거에 급제하고 중앙에서 활동함으로써 가문이 명성을 얻었다. 『고려사(高麗史)』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의하면 이연경이조년의 아우가 된다. 이연경은 시중(侍中)을 지낸 이인복(李仁復)이인임(李仁任)의 작은할아버지이며, 원나라에서 과거에 급제하고 관리를 지낸 이승경(李承慶)[이천년의 아들]은 조카이다. 이승경과 돌림자가 같은 것으로 보아 이조년의 조카일 가능성도 있다.

[활동 사항]

활동 사항에 대한 기록이 매우 소략하여 생몰 연대를 알 수 없지만 대체로 순탄한 관직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의 1341년(충혜왕 복위 2) 12월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한다. 이연경이 충혜왕을 뵈니 왕이 이연경의 형[이조년]이 자신을 욕보였다고 말하였다. 이연경이 형이 늙어서 노망이 났다고 대답하자, 왕은 기뻐하며 쌀과 콩 50석과 베 500필을 하사하였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정이 있었다. 문열공 이조년이 충혜왕에게 바른 말로 자주 간하였는데 왕이 듣지 않자 고향인 성주로 가서 죽을 때까지 조정에 나오지 않았다. 충혜왕은 이를 매우 괘씸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아마도 이연경이 형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러한 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이연경은 1355년(공민왕 4) 윤일월에 흥안군(興安君)으로 임명되었다. 이조년이 1269년생이므로 이연경은 1270년 이후 어느 시기에 태어났고, 1355년에도 관직에 있었으므로 그 이후에 사망한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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